• '유비무환(有備無患)'

  • 박남석 | 2016.05.12 17:08 | 조회 1603

    ‘유비무환(有備無患)’

    박 남 석(토론토)

     

    만화방창(萬化方暢)하는 계절이다. 봄볕에 거머무트름해지면 보던 임도 몰라본다는데 새들은 화답(和答)과 화음(和音)의 극치를 이루며 지저귄다. 사래긴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농부의 마음은 한시가 바빠도 가을밭을 꿈꾸며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워준다.

     

    “앗살람 알라이쿰(al-salam alaykum·당신에게 평안을)” 70년 맹방(盟邦)을 훈장처럼 내세우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아무렴 예전 같지 않고 껄끄러운 걸 알면서 어느 한 쪽이 먼저 다가서기도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떠들썩한 구호는 공허하게 마련이겠고 정치적인 이해타산에 현안(懸案)을 담보하는 것도 경계해야 마땅할 일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총선 성적표를 받아든 이후 처음으로 19대 국회의 마지막 임시국회 안건을 위해 겉으론 화합의 목소리를 냈지만, 주요 쟁점법안의 처리 순서와 내용에서 입장차가 컸던 모양이다. 3당 당권경쟁은 후끈하지만 모두가 내홍(內訌)에 민생현안은 발목 잡히고 논공행상(論功行賞)에 자화자찬하는 모습이 자가 사리 끓듯 한다.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고 조삼모사(朝三暮四)도 제 버릇이겠지만 잿밥을 나누기보단 독식(獨食)하려들고 잔머리를 굴리는 꼬락서니라니. 국민들은 모자에서 산토끼라도 짜잔~ 하고 꺼내길 기대조차 하지 않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회지도층의 부패와 토착비리 앞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국민들과 기업의 건전한 경제활동을 힘들게 하는 구조적‧고질적 비리를 뽑아냅시다.”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기 상반된 평가를 내리며 온도차를 드러내겠지만,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려함에는 무리수가 따르기도 할 테다. 우리 눈에 쓸모없어 뵈는 사람도 끄떡없이 지내는 걸 보면 아무렴…. 하지만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최근 30년 동안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대들보이자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렸던 조선업은 이제 ‘제2의 IMF 사태’ 뇌관으로 추락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이라고 강변(强辯)하는 걸 보면 경영자 소수의 잘못된 판단 탓으로 돌릴 일도 아니라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화 과정만 보더라도 ‘미뤄둔 구조개혁의 산물’이자 ‘한국형 성장모델’이 한계에 달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금까지는 조선경기 호황 탓에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주민들까지도 어느 정도는 나눠가질 수 있었지만 이젠 손실과 실패를 공유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조선·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현실화되면서 대규모 인력 감축도 불가피해졌고 3만 명가량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동안의 피나는 자구(自救)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정부당국의 추가 감축을 강하게 압박받으면서 감원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이다.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추진은 ‘밑 빠진 독에 혈세낭비’일 수 있겠다. 수렁에 빠진 은행권의 작년 말 부실채권 규모는 30조원에 육박하여 지난15년래 최대라고 한다.

     

    세계 조선업의 불황뇌관은 ‘가장 좋았던 시절’에 이미 타들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셰일가스 개발로 저유가 국면이 지속되면서 석유 메이저업체들이 앞 다퉈 심해 유전 개발에 나서 석유탐사 및 시추구조물인 ‘해양플랜트’ 수요가 급증했다. ‘신성장동력’을 앞장서 선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국내 기존업체는 물론 인수·합병으로 급속히 성장한 신규업체도 경쟁에 가세했고 정부의 졸속정책은 완전히 뒷북이었다니 말이다. 실직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지역경제는 불황을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할 지경이라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한한 인간은 흥망성쇠를 거듭해오면서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희망 속에 현재라는 기회가 주어졌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지만, 지름길만을 모색하기보단… 이념적인 논리만 내세우며 갈등만 야기(惹起)시키기보단…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지녔으면 오죽이겠다. 푸줏간에서 쇠고기인줄로 알고 연분홍빛 말고기를 잘못 선택할 경우가 어이없을까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진 않아야할 일이다.

     

    “소복이 모여 있는 혜초는 물가에서 자라고/ 녹색 잎에 그늘 깊어 반쯤 숨으려하네/ 가장 좋은 것은 맑은 바람에 나부끼는 곳/ 하나의 옥(玉)같은 꽃대에 아홉 개의 꽃이 피었네.”/ (叢叢蕙草水之涯 / 綠葉陰深半欲遮 / 最是淸風披拂處 / 一莖嫩玉九枝花) / [소식(蘇軾) / 북송(北宋),《혜초(蕙草)》]

     

    2016년5월12일 K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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