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 박남석 | 2016.05.26 19:20 | 조회 1775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박 남 석(토론토)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살이에 취생몽사(醉生夢死)하는 천하의 주당(酒黨)들도 음주를 삼가는 날이 있다고 한다. 12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유일(酉日)이 그 날인데, 술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두강(杜康)의 기일(忌日)이라는 게 알량한 이유라고 한다. 봄은 오고, 다시 봄은 지나가겠지만 바람 불고 비오고 궂은 날이 며칠쯤 이어지고는 후덥지근한 기운이 밀물처럼 밀어닥칠 테다.

     

    대기오염이 늘면서 미세먼지나 꽃가루 농도가 높아지는 봄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괴로운 계절이다. 말하기가 쉬워서 건강한 생활습관이지 꽃가루 날리고 기도(氣道)에 자극이 심해지면 재채기에 쌍코피가 터지는 경우도 없잖다. 자면서도 콜록콜록 숨 쉴 때마다 쌕쌕거리면 ‘감기의 탈’을 쓴 천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니 유의해야할 봄철건강이다.

     

    건조해진 날씨와 40km/h 강풍 속에 통제할 수 없으리만치 화마(火魔)가 확산되면서 캐나다 최대 석유도시 포트맥머레이를 휩쓸고 동북쪽 사스카치완 주까지 위협받을 가능성이 우려됐었다. 타오르는 불길과 시커먼 연기가 뒤덮인 가운데 긴급대피령이 내려져 피난길에 오른 이재민은 9만 명을 훨씬 넘었다고 한다. 다행히 불길이 진정 국면인가 싶었더니 불씨가 되살아나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기댈 곳 없는 마음 같아선 때맞춰 봄비라도 넉넉히 내려줬으면… 바라마지 않는 우리들이다.

     

    무명작가가 미술작품을 거의 완성해 넘기면 약간 덧칠을 하거나 자신의 작품인 냥 사인만 더해 출품하는 ‘대작(代作) 논란’이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毒)이 될 ‘대작’의 개념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설왕설래한다. 물론 찬반 양쪽이 다 일리 있는 이유를 내세운다. 뉴스보도에 의하면 당사자는 “작품의 90% 이상을 S씨가 그려준 건 사실이나 미술계의 관행이다”고 주장한다니 혼란스러워진다. 한편 트위터에선 “그림 대작이었다는 것은 별로 놀랍진 않은데 그걸 수천만 원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니… 도대체 왜?”라며 죽 끓듯 한단다. 그의 그림을 ‘작품’으로 본 사람들의 안목도 바닥인 셈이겠지요.

     

    세상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듯이 누구에게든 감추고픈 과거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처가 혹은 말하지 못하는 아픔도 있을 것이다. 다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회한은 가슴을 후벼 내릴 터이다.​ 모든 것을 법으로 정하고 규제할 순 없는 일이다. 지켜야 마땅한 공리(公理)와 도덕을 아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자율성에는 윤리와 상식이 존재한다.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이나 살 것처럼 움켜쥐려드는 우리들이다.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슬그머니 얹는 몰염치의 행동으로 비쳐짐은 누구 혼자만의 섣부른 생각일까.

     

    우리가 역사책에서 알게 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바빌론 원정(遠征)길에 33살 젊은 나이에 영면(永眠)을 하고 말았다. 진군(進軍)을 재촉하던 힘찬 북소리와 말발굽아래 세상을 굴복시켰지만, 하찮은 모기에게 긴 칼을 빼어들지 못하고 물린 뒤 심한 열병(熱病)을 이겨내지 못한 때문이었다. 짐(朕)이 숨을 거두거든 “나의 빈손을 무덤 밖으로 내어놓도록 하라!”던 그의 마지막 유언은 의미가 심장하다뿐이 아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을 은유하는 말이다. 뉜들 탓 할게 없겠소마는 창밖의 뭇별들이 영롱하여도 어김없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난다.’(空手來空手去)는 소풍길이다. 이래저래 호불호(好不好)가 엇갈리는 이 풍진(風塵)세상이다. 깊은 산속의 사슴은 산 마늘을 즐겨 찾을지언정 사람은 편식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여길 순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관행이 없어지면 오죽이겠다.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2016년5월26일 K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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