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누스(Janus)의 두 얼굴'

  • 박남석 | 2016.07.21 17:12 | 조회 1659

    ‘야누스(Janus)의 두 얼굴’

    박 남 석 (토론토)

     

    ‘석사, 박사’보다 더 높은 학위는 ‘밥사’이고 공자, 맹자, 순자, 노자, 장자보다 훌륭한 스승은 ‘웃자’라는 우스갯말을 얻어들었다. 까칠한 세상살이에 오죽이면 따뜻한 밥 한 끼니 사는 맘가짐을 높이 샀을까만… 한술 더 뜨자면 술이 고플 때 ‘술사’는 친구가 더없이 좋고 ‘감사’하지만 최상의 학위는 ‘봉사’가 아닐는지. 어려운 이웃에게 재능과 재물 등의 기부로 나눔을 베풀면서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 가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행복한 삶을 맛볼 수 있는 때문일 테다.

     

    사는 게 어렵다고 꿈도 못 꿀까마는 “덕(德)에 의지하면 융성하고 힘에 의지하면 망한다.”는 교훈도 있고, ‘잠깐의 분노를 참아내지 못하면 일생동안 화를 면치 못한다(一日不忍怒 一生不免禍)’는 경구(警句)가 회자되고 있다. “많은 인생의 실패자들은 포기할 때 자신이 성공의 문턱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의 말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시쳇말이 있듯이 식량의 자급자족은 여느 세대를 불문코 매우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거의 수입농산물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누굴 탓할 수 있을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차치하고라도 식량자급자족을 허술하게 여긴 나머지 이토록 초라함은 하찮은 미끼를 탐하다 낚싯바늘에 꿰인 물고기나 다름이 아니다. 때늦은 후회일지나 비굴하리만치 자존심은커녕 국민을, 주권마저도 버려야하는 ‘빌어먹는 거지’로 전락해서야 아니 될 일이다.

     

    사람을 사회적동물이라고 이르는데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개념을 잊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하다보니 배려해야 할 것은 걱정이 지나치다는 견해도 적잖다. 아닌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려드는 못 말리는 ‘일부 옹고집’은 구재불능이다. 연장자의 의견이니 사람들이 당연히 옳다고 여겨서일까? 아니올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건 한참 빗나간 착각이고 오산(誤算)일 것이외다.

     

    석유의 고갈 론(論)은 산유국들이 맨 먼저 주장한 것이고 석유 유통업체들이 덩달아 가며 부추긴 셈인데 유엔미래보고서는 석유자원의 고갈(枯渴)이 아니라 대체에너지 등장으로 석유판도가 뒤바뀌게 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2007년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한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 라젠드라 파차우리(Pachauri)의장이 거액의 연구기금을 타내기 위해 ‘히말라야 빙하가 머잖아 녹아 없어질 것’라는 허위주장을 되풀이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사드 수용 의사를 두고 정치권인사들이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님비(NIMBY)를 외치며 결사반대 머리띠를 두른 채 혈서를 쓰는 사진이 커다랗다. 우리가 경계해야할 위선자의 모습보단 훗날 오늘의 선택이 어떻게 평가될는지 염려하며 국토방위를 실현하는데 머리를 맞대고 애쓸 일이어야 할 텐데….

     

    망상이나 강박적 사고에 사로잡힌 이들이 적잖다. 주위 사람들이 갸우뚱하는 그들의 행동거지는 미심쩍고 뭔가 닮은 구석이 흡사하기까지 하다. 긴요한 대화를 나눈다며 되레 자신이 사는 곳을 싸움터로 만드는 줄도 모르고 겉으론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나 가슴속은 텅 빈 사람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배웠어도 따라 미치지 못함을 탓할 순 없겠지만, 자신을 개세지재(蓋世之才)로 착각하며 견강부회(牽强附會)에 거품을 물어가니 말이다. 진부하게 느껴질 표현일는지 모르지만,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過猶不及)’는 옛말에 - “실제 존재하는 것들은 물론이고 개념으로 존재하는 가치들까지”- 어긋남이 전혀 없다.

     

    새콤달콤한 새빨간 유혹의 체리가 한창이다. 절밥은 전체식(全體食)으로 밥알 하나, 콩나물 꽁지 하나도 안 버린다. 건강하게 먹는 즐거움과 감사해야할 자리에서 미식(美食)만을 지나치게 탐하는 것은 글쎄다. 잘 먹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시쳇말을 생각 없이 지껄이지만, 가짓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선택할 것들이 넘치니 입맛이 까다로워지는 게 아닐까. 과유불급(過猶不及),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2016년 7월21일 K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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