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꽃 언덕에서"

  • 박남석 | 2016.09.28 06:50 | 조회 1819

    “들꽃 언덕에서”

    박 남 석 (7기, 전남대, 캐나다동부 ROTC연합회)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늦은 밤이나 꼭두새벽이면 가냘픈 귀뚜라미소리도 들려온다. 동물애호가인 브룩‧바커가 동물들의 생각을 의인화하여 그린《동물들의 슬픈 진실에 관한 이야기》는 인생보다 더 파란만장한 동물들의 생태를 알려주며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들이 동등하고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입도 눈도 팔도 얼굴도 없는 지렁이는 일상을 이끌어 가는데 부족한 게 많긴 하지만 심장이 9개나 있고 체절(體節)로 나뉘어있어 신체의 일부가 없어도 다시 자라난다. 돼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고, 판다곰은 어디든지 드러누우면 곯아떨어진다는데 얼룩말이 혼자서 잠을 이루지 못함은 포식자의 먹잇감이 되기 쉬어 주위를 살피는 동료가 없으면 잠을 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벌이 벌집(honeycomb) 가득 꿀을 모아 나르는 노동력을 최저임금제로 산출해 봤더니 물경 $182,000이 된다.”고 일러준다.

     

    양상군자(梁上君子)는 ‘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도둑’을 완곡하게 이른 말이지만 천장위에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서생원을 지칭하기도 한다. 지난 세월에도 유력인사 댁 삽살개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 조문객이 구름처럼 다녀간 모양이다. 눈도장 찍느라 떠들썩한 이들 모두가 의관을 갖췄지만 도둑놈이란 걸 알지 못한다고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옛글이 그리 어렵지 않게 눈에 띄니 말이다.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우리사회에 대한 국민적인 반감 속에 세상에 모습을 보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최근까지 이런저런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그릇된 행태는 많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성공하기 위해선 연줄이 필수, 청탁도 능력이다’ 식의 잘못된 가치관이 전혀 낯설지가 않아서일까만… 제아무리 곱씹어도 그 이면에선 부정과 비리마저 공유해온 측면이 다분 하다뿐만이 아니다.

     

    국가가 식사가격을 정하는 게 어처구니없는 일 같지만, 그 폐해가 오죽했으면 ‘청탁금지법 관련 관계차관회의’를 열고, 시행령안의 금품수수 허용 가액기준을 원안대로 유지하기로 했을까. 법이 제정됐으니 준수해야 한다면서도 마땅찮게 생각하는 분들이 없진 않을 테다. “자기 호주머니 돈으로 지불하면 하등의 문제가 될 리 없을 텐데…” 쓸데없이 욕지거리 얻어먹을 소리인 줄 알면서도 잠시 생각해봤다.

     

    보다나은 세상을 구현해 나아가자는데 “너무 많은 제재대상은 물론 적발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머잖아 유야무야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며 변질되어 이어갈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틀린 말도 아니라”며 어물쩍하니 재 뿌려가며 뜸들일 일이 아니잖은가. “법 존재 자체가 없어, 부정부패‧비리가 위법조차 되지 않던 시절 어떠한 부정청탁도 할 수 있고 그로인해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니란 걸 지금세대는 아닐지 몰라도…”라고 에두른다. 속내를 애써 감추려듦은 어설픈 장끼와 다름 아니게 비춰 뵈지나 않았으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공직자에 식사·선물 하는 이유는 민간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 때문이고, 할 수 있는 것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금지하는 방식으론 창의성이 발현되지 않을 테니 김영란법 취지를 살리려면 규제의 기본 틀도 함께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편다. 젯밥에는 귀신 뺨치면서 말귀 알아차리는데 어눌하고 바늘귀보다 못한 척 눈감고 야옹하는 셈이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법과 제도는 없는 줄도 익히 알면서 법이 포괄적이므로 무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선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며 딴죽이다.

     

    한(漢)나라 개국공신 장량(張良)이 일찍이 이교(圯橋)에서 은자(隱者)로부터 받았다는《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에 “평안함은 사람을 얻는데 있고(安在得人), 위험은 일을 놓치는데 있으며(危在失事), 부유함은 오는 것을 맞이하는데 있고(富在迎來), 가난함은 때를 놓치는데 있느니(貧在棄時)”라고 했다.

     

    맘먹기에 달렸다는 세상살이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게 마련이다. 줄리언 반스는《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당신이 피카소를 믿는 것은 그가 추상화를 시작하기 전에 앵그르처럼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고 적었다. 예로부터 ‘몸이 편안하면 오두막도 평온하고, 마음이 안정되니 나물국도 향기롭다!’고 한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은 법’이다. 경제가 무너지면 다시 일으키면 되지만, 우리네 마음가짐이 무너지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 값없는 들꽃은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을 /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을 /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유안진의 <들꽃 언덕에서>]

     

    2016년 10월호 Leader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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