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중물(盃中物)'

  • 박남석 | 2016.10.15 07:26 | 조회 1863

     


    배중물(盃中物)

    박 남 석(토론토) 


    백약(百藥)의 으뜸인데 한두 잔 정도는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그러나 예외의 경우도 분명 존재합니다. 말술을 마다치 않고 전봇대를 붙잡고 실랑이를 하려는 거야 차안(此岸)에 부재(不在)함이지만 술을 마신 뒤 운전하는 건 중대범죄이자 살인행위라는 경각심이 필요합니다. 겪어봐서 알지만 과음이나 흡연 등 기호(嗜好)문제가 단순히 자제력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치사율을 비교해보니 혈중 알코올 농도가 단속 기준을 넘지 않는 0.05% 미만일 때가 오히려 높다고 합니다.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부주의하게 운전해 사고위험과 규모가 커졌다는 얘기입니다. 귀중한 인명피해가 속출하지 않아 천만다행이지만 일부 파렴치한들의 주관적 기준은 적발 안 되면 선물이고 선견지명(先見之明)이라는데, 문제는 음주 자체가 아니라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로 여기는 태도와 만용(蠻勇)일 것입니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술을 사양하기는 현실적 어려움이 많을뿐더러 술을 체질적으로 잘 마시지 못해도 술을 들이킬 수밖에 없는 홍당무들의 괴로움을 알랑가몰라~ ‘면벽수행(面壁修行)’을 강요할 수만도 없을 터에 마셔도 난리, 안 마셔도 난리인 딜레마를 어찌 슬기롭게 대처하면 좋을는지요.


    오죽이나 썩었으면 부패와 뇌물을 금지하는 법안 때문에 경제가 위험하다고 얼빠진 소릴 거침없이 지껄이는 푼수도 비싼 밥 먹고 목청을 높여 가는가 봅니다. 쏜살같이 반복적인 일상의 변화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할지언정 세월이 물 흐르듯 빠른 건 달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삼스레 깨달을 줄만 알아도 충분할 텐데 말입니다.  


    리히터(Richter)5.8 규모의 지각변동(地殼變動)과 계속되는 여진에 불안스런 마음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소리만 들어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 트라우마(trauma)를 호소한다고 합니다. 지축(地軸)이 흔들거리고 여진(餘震)의 불안감에도 고향을 찾는 3,750만 배달민족의 대이동을 이곳 친구들은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여기며 고갤 갸우뚱거립니다. 한가위의 풍성함을 두고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라(加也勿 減也勿)’는 말뜻을 설명해주느라 덜 꼬부라진 혀로 나름 애써봤습니다.


    즐겁고 단란해야할 명절의 환상이 마음의 짐을 한가득 떠안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되레 갈등을 불러일으키고야만다는 명절증후군. 저마다의 머릿속에 샛별이 반짝이는 한 어찌 말릴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하오나 우리가 영위해가는 삶에는 무수한 얘기들이 존재합니다. 반달모양의 반죽에 소원을 의미하는 소를 넣으면,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우리네 조상님들은 기울어질 보름달보다는 반달 모양으로 송편을 빚었다는 그럴싸한 이야기도 얻어듣습니다.


    누군가 들으면 평생 올바른 말만하고 사는 줄 알겠습니다만… 오죽이면 ‘미운사람 떡 하나 더 준다’던 이야길 유추해보면 짐짓 알면서도 안하려들겠지만, 사실은 몰라서도 못하는 경우가 어이없진 않을 것입니다. 저 혼자만의 경우도 아닐 테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는지요.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 김용택의 시《가을》- 


    2016년 10월07일 K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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