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단지보(邯鄲之步)’

  • 박남석 | 2019.01.28 19:22 | 조회 976

    한단지보(邯鄲之步)’

    박 남 석 (7전남대캐나다동부 ROTC합회)


    2019 기해(己亥)새해에도 건강해야 돼지사랑해야 돼지행복해야 돼지!’ 뜻하지 않게 마차를 얻어 탈 순 있을지언정 한사코 내딛기 좋아하는 발걸음은 덤으로 건강을 얻겠거니더 큰 행복과 희망의 빛이 온 누리에 가득하시기를 기원하며 삭신을 아끼려 움츠려들기보단 슬기롭게 다스리고 지켜 나아가야겠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요즘 한국 사회를 가장 잘 규정하는 단어 중 하나라고 한다빠른 속도로 진행된 신자유주의화로 경쟁이 극심해진데다 위기를 겪어오면서 국가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공동체 연대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남 탓을 아무거리낌 없이 한다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불신한 채 이해타산관계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결과로 이어졌으랴사회가 공공이익이나 가치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향한 공감과 배려가 없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 남은 곳이다는 지적처럼 들린다자기편의주의적인 생각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가 아닌 남 탓으로만 치부할 일은 결코 아니어야할 터인데

    .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고 했다프로는 결과로서 보여준다는 것이 우리들 눈에는 고지식하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자기 본분(本分)을 지키며 살아야한다는 말을 에둘렀음일 테다. “사세삼공(四世三公)의 원소(袁紹못지않게 난세(亂世) 조조에게 기회가 있다는 실용적 면모를 보여주려고도 애쓴다풀은 비바람이 거세면 몸을 낮춰 드러눕는다세상 살아가는 방법과 수단이 아니라 처신이 솔직담백해야 하겠다. 영광의 발자취는 모두 어제 내렸던 눈이다.


    미국정부의 일시적 업무정지로 정치와 경제 불안이 커지며 뉴욕증시를 필두로 3대 지수가 모두 2% 넘게 하락하여 일본유럽 증시가 일제히 급락해버린 최악의 성탄절을 맞이했다매년 연말연시의 증시가 강세를 보이던 산타랠리는커녕 미국 연준이 금리인상 기조를 지속하고 있는데다 미·중간 무역 갈등도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세계적 증시불안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감세와 정부지출 확대를 기반으로 하는 트럼프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내년 이후에는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는 때문이다.


    1995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크뤼천은 인류가 새로운 지질(地質)시대를 열었다며 인류세를 구분할 지질학적 지표로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같은 기술화석이 손꼽혀진 현재 시대를 인류세(人類世Anthropecene)’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세상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마지않는 인류는 지구가 지난 45억년 동안 경험한 것 이상으로 생물권(生物圈, biosphere)을 제멋대로 욕심껏 급격히 바꿔놓은 셈이란 말이다.


    뒤바뀐 환경에 적응한 개체(個體)가 ()의 변화를 이끄는 자연선택이 아니라인간의 소비가 해당 종의 형태를 바꾸는 인간선택이 일어났다는 얘기다인간의 적극적 개입으로 육계(肉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류(鳥類)가 됐지만 영광의 대가는 혹독하다가슴과 다리근육의 급격한 성장으로 심장과 폐()가 상대적으로 작고뼈에 구멍이 많이 생기는 등 문제점이 발생해 오래살기 어려운 동물이 되고 말았다브로일러의 도축(屠畜연령을 부화 후 5주에서 9주로 늘렸더니 폐사율(斃死率)이 7배나 늘었다는 연구결과가 나타났다전 세계 육계 병아리의 90%를 회사 3곳에서 공급하는 만큼 유전적인 다양성도 훼손됐을 뿐더러 육계는 자연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품종이 됐다며 필요에 의해 생물권을 변화시킨 사례가 인류세(人類世)를 설명하는 지표일 수 있다니 유구무언일 수밖에.


    무심한 구름과 사심 없는 달빛이 아니라 인류가 지구 역사의 중심이 됐다는 선언이 한편 섬뜩하게도 들린다제 나름의 뜻과 가치를 보다 숭상하고 이념과 이상만을 추구한 나머지 권력이나 종교를 빙자해 생계를 연명하려드는 이들도 적잖을 터이다온갖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기 힘들었던 경험이 잔재(殘滓)되어 떨쳐버리질 못했을까만 우리가 목표를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이 나 아닌 다른 쪽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고 보면도덕적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불통(不通)으로 치닫는 건 아닌지 이 또한 겸연쩍은 일이다.


    장자(莊子)<추수(秋水)>편을 한단지보(邯鄲之步)’의 교훈이라고도 일컫는다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서 걸음걸이를 배운다는 뜻으로 본분을 잊고 그저 남 흉내삼다가 본래 가졌던 걸 모두 다 잃어버릴 수 있음을 말해준다. ‘진흙탕에 꼬리를 끌며 다니려는가?’라며 벼슬에 몸담아 얽매이기보단 자유롭게 사는 편이 훨씬 나음을 이르는 예미도중(曳尾塗中)’ 우리 속담에선 뱁새가 황새걸음 쫓다가 가랑이 찢어진다했다자기선택의 결과를 두고 남 탓하려들지 말고제자백가(諸子百家)에서 얻어듣고 배워가며 반면교사로 삼아가는 우리네 삶이기도 하다.


     이른 정치인 테마주 바람은 지금 우리나라 증시에 별다른 호재가 없는 약세장이란 반증이라고 한다약삭빠른 바람잡이들의 전형적인 뜬구름 잡기’ 아니면 치고 빠지는 파렴치 수법이지만 금융당국도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어수선한 바람을 틈타서 미리 주식을 사놓고 특정인과 관련 있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흘려 차익을 챙기려는 흉계와 작전세력들도 있었다니 배전의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입장과 처지의 유불리(有不利)에 따라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횡포에 휘둘리고 세상인심인 줄로 여겨야할 때가 없었을까만 영원할 수 없고 언젠간 그 끝이 있음을 사람들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이라며 에둘렀다영원토록 무궁할 것 같은 젊음도 오가는 세월 속에 하염없이 꺾이고태산 같은 부()도 바람결에 흩어지더라 하더이다.


    소박한 삶 속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혜를 일깨워주는 잠언집(箴言集)을 읽었다.

    사람이 나물과 뿌리를 먹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竹影掃階塵不動 月輪穿沼水無痕

    -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늪을 뚫어도 물에는 자취가 남지 않네.’ -

    -채근담(菜根譚)에서 -


    2019년 2월호 Leaders’ World 

    수정 삭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