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게티 공장(Spaghetti Factory)’

  • 박남석 | 2017.10.27 20:28 | 조회 1357


    스파게티 공장(Spaghetti Factory)’ 

     박 남 석 (토론토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계절이다힘차게 걸어 나서는 이른 아침 산책길을 스치는 바람결이 오감(五感)을 일깨워주는 듯하다음식은 저마다의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지만 영양과잉에 민감한 현대인들에게 구황(救荒)작물이 건강식품으로 각광 받게 된 요즈음 한편으론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먹어야 배부르고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 줄은 누구나 안다그런데 돈이 당장 필요치 않을 땐 돈 좀 빌려 쓰라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더니여차할 땐 빌려준 돈부터 앞 다퉈 회수해가는 행위를 금융업계 용어로 ‘리스크 관리라고 일컫는 세상인심이다세월이 흐르면 요리법과 재료의 선택에도 조금씩 다르겠지만이렇다 할 맛이 없는 바다제비집이 최고의 식()재료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뉘라서 비()가 올 때 우산을 빼앗긴 경험은 없다지만짐짓 음식에만 적용되는 이야긴 아니지 않을까싶다.


    ()나라 시인이며 미식가였던 원매(袁枚) ‘제비집 수프를 빗대어 “()로 음식물을 먹는 게 아니다고 일렀다얻어듣고 알려진 명성(名聲)만으로 맛있다고 판단하지 말라는 ‘제비집수프는 자체만으론 아무 맛이 없지만 다른 재료와 조화를 이뤘을 때 더할 수 없는 제 맛을 낼 수 있다는 말씀이다. “지극한 맛은 아무 맛이 없다(至味無味)” 뜻의 덤덤한 그 맛은 밥이 있어야 반찬이 맛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니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진다.


    동양권에서 국수는 희고 긴 모양 때문인지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는 의례(儀禮)음식으로도 대접을 받는다이탈리아음식의 대표주자인 파스타(Pasta)는 모양도 각양각색이고소스와 부재료로 고기해물채소 등이 두루 쓰인다파스타도 건면(乾麵), 생면(生麵)이 있는데 그중 널리 알려진 스파게티(spaghetti)는 굵기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는 모양이다.


    팔진미(八珍味오후청(五侯鯖)은 아니어도 풍미(風味)가 뛰어나고 분위기 산뜻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더 좋은 오늘의 점심식사였다김영란법에 저촉되지도 않을 우리들의 입맛은 고릿적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때론 분위기에 휩쓸려 과식한 경우를 누구나 적잖게 겪어봤겠지만다다익선(多多益善)을 추구하기보단 적당히골고루자제(自制)할 줄 아는 노력도 필요했다 


    유년시절 가장 먹고 싶었던 짜장면 가격을 어디까지 기억하느냐가 세대(世代)를 가늠하는 척도로 삼는다고 한다.. 지금도 짜장면 위상은 여전하겠지만 아쉽게도 수타(手打)로 면발을 뽑는 소리가 드물어졌고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인스턴트라면에 길들여지기도 했다큼지막한 그릇에 쌀국수 포(Pho)를 담고 얇게 저민 쇠고기나 닭고기를 곁들여 육수를 붓고 파슬리()숙주 등을 고명으로 얹어주는 월남국수집의 신장세(伸張勢)가 우후죽순(雨後竹筍)을 보는 듯하다. ‘누님 떡도 값싸고 맛있어야 사먹는다던 옛말이 허투루 그냥저냥 지나칠 일이 아니어야 할 테다.


    筆頭去取萬千端 後世遭它恣意瞞 王覇漫分心與迹 到成功處一般難” [주숙진(朱淑眞), 南宋 /(讀史)] (붓끝은 버리고 취()함이 천만갈래라 후세(後世사람들을 제멋대로 속이지 왕업(王業)과 패업(霸業)은 부질없이 마음과 자취를 나뉘어져 성공에 이르기가 한 결 같이 어렵다네.)


    금강(金剛)소나무는 가슴아래 나뭇가지를 두지 않는다.”고 하는데 식사초대에 흔쾌히 참석해주신 L선생님께서 거절을 하면 맛볼 수 없을 테고 막상 나서려니 폐()끼칠 것만 같아 노심초사(勞心焦思)하셨다며 유머감각을 한결 빛내주셨다자리를 함께해주신 즐거운 시간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식당 문을 나서자 늦가을 햇살이 수채화처럼 우리들 마음에 스며드는 듯했다.


    20171027 K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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