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염상정’(處染常淨)’

  • 박남석 | 2018.05.01 06:55 | 조회 1068


    처염상정’(處染常淨)’

    박 남 석 (7전남대캐나다동부 ROTC연합회)


    꽃이 피고 잎 새가 푸르러진 봄날이다. 여명(黎明)을 반기고 황혼녘을 꺼리는 사람 마음은 모래펄의 물새를 닮았다고들 말한다하오나물리학자가 아니어도 직립보행(直立步行)을 할 수 있고그게 중력(重力)의 덕분이라는 걸 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혀가며 좀 더 현명해지려 노력해가는 우리들이다.


    현재 10nm(나노미터·10억분의1m)의 공정(工程)이 개발됐다지만과학기술은 결과가 아닌 도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대기오염과 심각한 환경문제는 차마 숨쉬기조차 꺼림칙함을 호소해도 대책은커녕 실효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무너져 내린 쓰라림은 짐짓 살을 에고 소금치는 소리에 버금간다. ‘더러운 곳에 있어도 항상 정결하다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 생각을 키워준다.


    누구나 마음먹으면 금방 금연하는 줄 알아도 생각처럼 여의찮은 경우가 많다오죽했으면 담배 끊은 사람하곤 상종 말라고 했을까마는정말 무서운 게 니코틴 중독이다탐라국의 방언에 각씨 일른 건 안 섭섭허여도 남통머리 일른 건 섭섭혼다”(마누라 잃은 건 섭섭하지 않아도 담배통 잃은 것은 섭섭하다)고 말했다지요당신네들 기호(嗜好)에 거리낌이 없던 세월이었다손 담배연기니코틴의 역겨운 냄새와 화재위험까지 남에게 피해만 끼쳤을 텐데 뉘시랄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피워댔으니 너구리굴속을 방불케 했으리라 짐작해본다.


    흐름 뒤에 보금자리 친 흐름 위에 보름가리 친 나의 혼()” <방랑의 마음>오상순(吳相淳)시인의 아호인 공초(空超)’는 우리말의골초를 한자화(漢字化)한 것으로 하루 평균 200개비를 피워 문 애연가였다고 한다요즘처럼 매연가스나 공해를 거론하며 공권력이 막아서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할 순 없겠다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고 의료 기술도 날로 발전하지만 정작 건강을 향한 우리들의 관심과 실천은 얼마나 될까바쁜 일상의 우선순위에 밀려 핑계 삼아 스스로 돌보는 것을 소홀하진 않았는지 자성(自省)해 볼 일이다.


    지금이라도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간접흡연으로 인한 이웃과 주변의 피해도 보살펴낼 줄 알아야겠다흡연으로 인한 때늦은 후회와 땅을 치며 통곡하는 일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이다애연(愛煙)이 끼치는 건강상 불이익을 달리 말하자면 월부(月賦)자살연부(年賦)자살이나 다를 바 없다본인뿐만이 아닌 백해무익한 구름과자의 애용과 권리주장이랍시고 미화하기에 앞서 비()흡연자 권리가 우선되어야함은 아무렴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꽃은 나비에게향기는 바람과 함께 나누어도 남는 것이라고들 하지만사람들은 가래침이 나오지 않을 때식후불연(食後不煙)이면 소화가 안 되거나 심지어는 몸이 오슬오슬 떨리는 오한(惡寒)에도 유익하다며 견강부회(牽强附會)를 일삼으니 글쎄다간접흡연에 노출되어도 체내의 니코틴농도가 흡연자 수준에 이를 정도로 건강에 치명적으로 유해한 것이 담배다우리 몸에 이롭고 해로움을 떠나서 중과부족(衆寡不足)을 따지려든다 해도 이롭지 못하고 해()가 더 많음이 밝혀졌음에도 금연의 실천 의지가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은 물론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윈스턴·처칠 수상의 사진을 찍고서 나의 인생은 바뀌었다.”고 소회를 밝힌 사진사 유섭·카쉬와 처칠의 사연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1941년 캐나다수도 오타와를 방문한 처칠은 의회 연설을 통해 히틀러에게 맞서 강력히 대응해 싸워나가자고 역설했다캐나다수상 매킨지·킹의 초청으로 처칠을 촬영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조명과 카메라를 세팅해둔 채 연설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그가 시가흡연을 잠시나마 멈춰줄 것을 삼가 권하자 언짢은 표정을 감추지 못한 그 순간을 놓칠세라 플래시를 터트렸다사진은 <LIFE>잡지에 보내져 표지인물로 실렸다.


    수많은 신문과 잡지가 앞다퉈가며 카쉬의 으르렁거리는 처칠’ 사진을 실으면서 2차 대전에 임하는 처칠과 영국의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아이콘이 되었으니 가히 전쟁의 흐름을 돌려놓았다고 할 만한 사진이 된 것이다대영제국의 굳센 전의(戰意)를 보여준 것 같은 표정으로 국민들은 이해를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게 딱 들어맞았다고 할까그러나저러나 그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지면(紙面)에 실린 사진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1776년에 합중국(合衆國건국의 조상들이 국가 이념(理念)으로 선택한 <다수에서 하나로(E pluribus unum, Out of many, one)>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격언인 하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모든 것은 하나로 부터 나온다에서 영감을 받아 고안했다는 문구다행여 비바람에 꺾어질세라 허리를 낮췄어도 창피해야할 이유가 없을 들꽃은 햇볕을 찾아 옮겨 다니질 않아도 강인하고화려하진 않아도 아름다움을 피워낼 줄도 안다.


    군자(君子) 풍모 생각하니 엄숙해지려 하는데 과연 인물은 강서에 있네. / 

    일찍이 푸른 하늘끝자락의 돛 그림자 읊었고 또 맑은 개울에서 함께 배타고 취하여 노래했지” /

    (君子之風思欲齊 果然人物在江西 曾吟帆影碧空盡 又賦同舟醉玉溪)


    [하영기(何永沂) / <증답신초(贈答新草)>]


    2018년 5월호 Leader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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