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다르고 ‘아’ 다른 말씨

  • 박남석 | 2018.09.27 11:23 | 조회 885

    ’ 다르고 ’ 다른 말씨

    박 남 석 (토론토)


    한가위음식을 준비하며 송편을 곱게 빚어내는 수고로운 손길은 분주하기 짝 없는데 눈과 코입은 즐겁기만 했다들쭉날쭉한 크기와 주물 떡처럼 생긴 모양세도 함께 섞여있었지만고소한 풍미와 쫄깃한 식감은 엄지 척치켜세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참새 떼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질 않지만우리들은 멋과 칼로리를 모두 챙긴 나머지 과식(過食)으로 속이 더부룩하다싶어 스스로 걷기운동에 적잖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 이루었다면 이내 물러나야 한다.’는 공수신퇴(功遂身退)” 2천 수백 년 전 노자(老子)의 지론(持論)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경쟁사회의 정신적 피폐와 기술 문명의 발전에 따른 환경 파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천하에 금기(禁忌)가 많으면 백성이 가난해지고통치자가 권모술수를 쓰면 쓸수록 세상은 더욱 어둡고 혼란스러워지며새로운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불행한 사건은 더 많이 일어나고법률이 정비되면 될수록 범죄는 늘어난다.”고 했다.


    시경(詩經)의 <대아(大雅)>에 앞으로 나아가거나 그 뒤로 물러서기도 곤란한 상황을 나타내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이 있다세상 살다보면 박수칠 때 비켜설 줄 알라는 에두른 조언도 얻어듣는다백전백승을 거뒀어도 자칫 방향을 잃으면 한낱 물거품이 되는 경우를 두고 일러주는 말이다비싼 밥 먹고 지껄이는 허튼소리처럼 들리겠지만아니다영락없이 딱 들어맞는 옳은 말씀이다서당 개 3년 만에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읊었거늘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는 선택의 여지(餘地)가 없음이겠지요.


    나이 들어가는 게 죄()는 아닌데 이상하게 죄인이 되는 것 같아라는 자조(自嘲)섞인 푸념이 회자(膾炙)되고 있다마음을 추스르고 주변을 살펴보면, ‘물심양면 준비 안 된 장수(長壽)는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는 섬뜩함이 현실임을 발견하게 된다여의주(如意珠)라도 지녔으면 오죽이련만귀퉁이에 내동댕이쳐진 듯 홀로 처절한 고독감을 느낄 땐 망연자실(茫然自失)할 일이다남녀노소 저마다 주장을 펼치기에 앞서 한마디 귀담아 들어주신다면 서로의 가치와 역할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노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젊은이들도 문제이겠지만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일부 현실을 간과해선 아니 될 일이다. “우리 늙은이들은 한때 젊어도 봤지만 젊은 너희는 늙어나 봤냐!”하시며 강요하려듦도언짢은 표정으로 낯붉힐 일도 아니다. ‘빈곤지병(持病), 고독(孤獨)’ 등 어르신들이 겪는 고통과 문제해결에 부정적으로 여기는 혐노(嫌老)현상이 안타깝지만오가는 대화 속에 감정이 순화된 언어를 사용하며 서로서로 고맙다’ ‘수고한다’ ‘즐겁다는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될수록 많이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항우(項羽) 군사적으로 우세했지만 동정서벌(東征西伐)하느라 완전히 지쳐있었다항우를 멸망시키고 천하의 주인이 된 한고조(漢高祖유방(劉邦)은 천하통일의 일등공신중 하나인 제()왕 한신(韓信)의 군사를 빼앗고그를 초왕(楚王)으로 책봉(冊封)시킨 뒤 한신에게 물었다. “나는 얼마만한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소?” “폐하께선 십만도 거느리지 못합니다.” 유방(劉邦)이 되묻길 그렇다면 그대는 어떠하오?” “()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며 어이해 내게 묶였단 말인가?” 한신이 대답하길 폐하는 군사를 거느리는 데는 뛰어나지 못하지만장수를 다스리는데 훌륭하십니다이것이 바로 신()이 폐하에게 묶인 까닭이고폐하께서는 이른바 하늘이 주신 것이지사람의 힘은 아닙니다.”사기(史記)<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전한다.


    지난 금요일 토론토에 토네이도가 한바탕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곳곳에 역력하다허리케인 플로렌스가 상륙한 미국 남동부에서는 사망자가 속출하고 대규모 정전과 항공기 결항이 잇따른다는 뉴스다. “태풍과 허리케인은 발생지역만 다를 뿐인 열대성 폭풍이다기후변화가 진행될수록 허리케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바다는 더 뜨거워지고 대기 중 열과 수증기는 더 늘어난다국립허리케인센터(NHC)는 이번 허리케인이 열대성 폭풍으로 약화하긴 했으나사람의 보행속도보다 느리게 이동하여서 수해가 엄청 클 것으로 관측됐지만 보다 큰 피해 없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전하는 소식에 안도하는 마음을 지닌다.


    暮雲收盡溫淸寒 銀漢無聲轉玉盤 / 此生此夜不長好 明年明月何處看

    해저물녘 구름 걷히니 맑은 기운 넘치고 은하수는 소리 없이 쟁반에 옥()을 굴리네. /

    세상에 이런 밤이 늘 있는 것도 아닌데 내년엔 밝은 달 어디에서 볼 수 있으려나

    [소식(蘇軾)/() / <한가위 달(中秋月)>]


    2018년 928 K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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