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찾아오는 소리 [중앙일보(토론토)2007년3월12일(월)]

  • 관리자 | 2007.03.11 20:26 | 조회 2447
    봄이 찾아오는 소리
    박 남 석 (토론토)

    초목에 물이 오르고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경칩(驚蟄)이 엊그제였다. 이곳 저곳 띄엄띄엄 잔설과 꽃샘바람 때문인지 개구리는 눈에 띄진 않았어도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참고 기다리던 봄기운이 성큼 다가설 것 같다. 그나마 오늘 식탁 위의 향긋한 봄나물을 맛볼 수 있음은 왠지 사치스런 느낌마저 든다.

    우정은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가슴 벅찬 느낌표지만, 사랑은 곁에 있을수록 확인 하고픈 물음표라고 했다. 내 곳간이 넘쳐야 남의 배 곯는 소리도 들린다고 너스레를 떤다. 알다가도 모르긴 마찬가지겠으나 서로 반목하여 사이가 매끄럽잖은 사람끼리 같은 장소나 처지에 놓여 겸연쩍어 하다가 공통의 곤란이나 이해에 협력하는 경우도 적잖게 볼 수 있는 우리네 삶의 현장이다.

    지난 일에는 가설이 없다는데 대나무가 열매 맺지 않는 얘길 하자면 하릴없어 뵐 터이나 오입쟁이가 헌 갓 쓰고 똥 누기는 예사였다고 한다. 성씨(姓氏)를 보면 조상을 알 수 있고 집성촌(集姓村)에선 물론, 이름만 들어도 여러 형제가운데 몇째로 태어난 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백이(伯夷)는 맏이요, 공자의 자(字)는 중니(仲尼)라서 둘째였고 숙제(叔齊)는 누가 뭐래도 셋째에 틀림없었으니 말이다.

    크고 작은 가치의 문제보단 순간의 선택이 중요할 때가 있다. 반말을 함부로 가리지 않고 한다면 상대가 설령 잘못을 했더라도, 아무렴 정의가 그 어느 쪽에 있다 해도 곱게 보이질 않게 마련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케 하는 마음씀씀인 어찌 부족하면 그런대로, 넘치면 넘친 대로 누구에게서나 배우며 살아간다.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수고하며 이랑을 짓는 농부의 삭신이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은 - 세상 일이 저러하고 시인의 노래가 이렇다 한들 -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겸손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세상을 보는 지혜’ 에서 “진부해지는 것이 두려워 역설적으로 되지 마라. 진부한 것이나 역설적인 면도 극단적이어서 우리의 판단을 헤친다. 우둔한 사람은 그것을 경탄하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이를 경고한다. 간혹 그것의 근거가 틀린 것이 아니라 할지나 역설은 판단의 왜곡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봄을 앓는 시인은 노래한다.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섬진강 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처럼/ 물 깊이 울어 보았는지요” -김용택–

    좋은 아침을 알리는 까치소리가 반가운 소식만 가져다 주길 바라는 건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어두웠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신앙의 고백으로 시작하여 영생의 찬미로서 세상을 열어가는 중에도 안타까움과 실천에 따른 어려움이 없지 않을 테고 감사 드려야 할 일에 관념의 차이를 약간 달리한다고 두고 쓰는 변명을 앞세우기도 한다.

    까닭이 있건 말건 돈키호테는 그렇다손 치자. 동산 위 하늘로 연을 더욱 높이 띄워 올려보자. 아직도 여전한 어려움에서 허덕이는 이웃에게는 안겨질 붕어빵 속에 살찐 붕어가 들어있었으면, 얼어붙은 꽃샘추위와 함께 봄이 찾아오는 소리가 시름을 덜어주고 희망을 더해주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중앙일보(토론토), 2007년3월12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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