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곡주수(金谷酒數)가 서 말(斗)일지나

  • 관리자 | 2007.05.08 19:23 | 조회 2828

    금곡주수(金谷酒數)가 서 말()일지나

    박 남 석 (토론토)

    카네이션 한 송이를 쑥스럽게 내밀기가 일쑤였지만 사랑과 존경심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보듬어 안는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시린 무릎을 감싸 안고 어깨허릴 두드리시며 어두운 눈과 귀로 적적하실 부모님을 찾아 뵙는 분들은 행복하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내리사랑은 우리들의 곁에 영원히 계실 것처럼 생각되기가 너무 쉽다. 정성으로 받들어 섬김이 마땅할 도리일터나 부모님의 안부를 전화로라도 여쭙자. 혼자서 걸어도 좋고, 둘이 걸으면 더더욱 좋다. 석류는 땅 위에 떨어질지언정 안 떨어지는 유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세상엔 언제나 날 기억하고 염려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로부터 질서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지록위마(指鹿爲馬)하거나 논공행상이 공정치 못하면 군신간의 신뢰가 떨어지고, 암투가 거듭되고 싹트길 되풀이해왔다. 뱀은 저희들끼리 싸울 땐 독을 내 품지 않는다는데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하면 할수록 꼬이게 마련이다. 제갈량보다 덜 유명한 장자방(張子房)은 박수를 치기 전에 떠날 줄 알았고 대의멸친(大義滅親)에서 자유로웠지만, 과업에 비해 훨씬 유명해진 제갈량은 분위기쇄신을 위해 읍참마속(泣斬馬謖)하면서 상대방이 들릴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고 전한다.

    꽃피면 달 생각하고, 달이 밝으면 술 생각하고, 술을 얻으면 벗이 없고, 벗을 얻으면 술이 없다지 않던가. 초록은 같은 색이라서 끼리끼리 모이는 게 친구이다. 욕심을 한껏 부려선 아니 된다(欲不可縱)는 이야긴 고대중국 방중양생학(房中養生學)의 핵심 교의(敎義)이기도 하다. 장취불성(長醉不醒)에도 주덕송(酒德頌)을 끄떡없이 읊었다던 죽림칠현의 술고래들은 우주의 한복판에서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일을 두고도 속 터질 일이 꽤 많았나 보다. 시비를 모르면서 마음조차 세월은 아닐진대 세상일에 이해 못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였으랴.

    누워서 제 얼굴에 침 뱉는 줄 뻔히 알면서도 중국의 신화시대를 역사시대로 편입시키려는 단대공정(斷代工程)이 동북공정(東北工程)과 탐원공정(探源工程)에 이어서 계속되고 있다. 착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빈속에 매운맛이 자랑거리인 청양고추를 잘못 먹었다간 놀란 입에 쥐가 나기도 할 터다. 하필이면 역사의 왜곡과 망언을 일삼는 낯두꺼운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지정학적 숙명이지만 우리의 것을 찾고 바로 잡기 위한 의지와 노력은 더욱 줄기차고 의롭게 대처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찮아 뵌 너덜겅의 돌덩이가 빛나는 구슬이 될지나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눈에 보이는 젊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선 평범한 얼굴에 입체감을 살려준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필러주사 는 대접을 받는다. 운동신경장애치료제로 쓰이던 보톡스 가 다한증(多汗症)에도 쓰이더니 이젠 주름 펴주는 약으로 더욱 인기라고 한다. 나 예뻐?

    산세가 험준할수록 경치는 아름다웠다. 밥은 봄처럼, 국은 여름처럼, 잠은 가을처럼, 술은 겨울처럼이라는 속담이 있다. 문전홀대쯤이야 그러려니 하다가도 고얀 인심에는 이를 데 없는 심사가 파자시(破字詩)에 배어난다.

    시무나무 아래 설은 나그네에게/ 망할 놈의 마을에선 쉰 밥을 주네/ 인간세상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에 돌아가서 설익은 밥을 먹으리라/(二十樹下三十客/ 四十村中五十飯/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김 삿갓(炳淵)

    중앙일보(토론토) 2007년5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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