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먼저 웃었더니만 [중앙일보(Toronto),'07년2월19일(월)]

  • 관리자 | 2007.02.20 22:46 | 조회 2353
    독자수필

    내가 먼저 웃었더니만
    박 남 석 (토론토)

    마음 속에 별이 되고, 아름다운 시가 되길 바라며 축복을 기리던 날 겨울하늘이 눈보라의 아름다움을 펑펑 선물해준다. 밤새도록 유리창을 두드리던 바람소리가 잦아들더니만 흰 눈 소복이 쌓였다. 동장군 등에 업힌 수은주는 입춘추위가 무서운지 꽁꽁 얼어 붙었다. 여느 때처럼 가까운 공원길에 무릅쓰고 다녀왔더니 코끝이 시끌시끌하다.

    떡 먹자는 송편이요, 소 먹자는 만두지만 본전생각이 나지 않고 여러 가지를 넉넉히 즐길 수 있는 뷔페음식도 배 부르면 도무지 맛난 게 없다. 짐짓 남기진 않아야 할 텐데 자제력을 잃을라치면 자칫 개밥 만들기 일쑤이고 생각 없이 분위기에 휩쓸린 자신을 발견하곤 그래서 씁쓸한 미소를 지을 때가 없지 않다. 두부를 먹다 틀니가 빠져도 도움 받는 일을 힘겹게 구하던 영감님이 고기가 먹고 싶어 숙주에 고사리 넣고 끓인 장어 국을 드신 뒤로 다른 것은 맹물에 조약돌 삶은 국 맛이라고 투덜거렸다나 어쨌다나.

    잘 삭힌 홍어가 곁들고 쌉싸름한 이슬 같은 물 서너 잔이 목젖을 치는 자리에도 덕(德)이 없으면 문란하고 예(禮)가 빠지면 난잡하게 마련이다. 호랑이는 한잔하면 산중에서 취하고, 천년 묵은 이무기도 두 잔이면 바다 밑에서 잠들게 한다. 하늘이 돈 짝만해진 취선(醉仙)은 어린 중에게 젓국을 먹이려 들진 않겠으나 과음의 후유증을 간과하기 쉽고 때론 그 효능이 과대평가되기도 한다. 백약의 으뜸이라서 소화시킬 필요조차 없겠으나 좋다마다 한다.

    생각이 말을 낳고, 말은 행동을 이끌어낸다. 사대부의 위엄과 체통을 손상 당하고 염치를 송두리째 빼앗긴 다음에야 근무할 수 있었다던 허참례(許參禮)는 조선망국의 구조적인 부패가운데 하나였다. 끊임없이 깨어있고자 하는 노력이 진정한 자유를 향해 정진할 수 있지만 굴복해야 할 운명은 어디에서건 없어야 한다. 물속을 자유로이 헤엄치는 물고기의 장단점을 꼬리에서 찾는다면 심성의 다양함을 이해하고 존경하는 것은 인간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초석이고 첫걸음이 아닐는지.

    오리처럼 뒤뚱거리면 오리가 되고 독수리처럼 날면 독수리가 된다. 서로를 닮아 마음이 열리고 기쁨이 넘쳐난다. 역경을 이겨내고 다스리는 위대하고 훌륭한 힘이야말로 사랑일 것이다. 행복이 오고 계절 따라 좋은 일이 많아질 날도 머지않았다. 부모형제 찾아 뵐 앞선 마음에 노루잠으로 설친 발걸음이 설날 고향 땅을 달려간다.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기쁜 마음으로 활짝 소리 내어 웃는 큰 웃음이 최고의 건강인줄도 알자. 우리들은 사랑하고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 먼산보고 딴전 피우다가 아무런 악의도 의도된바 없는 곳에서 잘못을 끄집어내려 했다면 더더욱 겸손해야 하겠다. 하나의 완성된 그림으로서 아름다운 퍼즐그림조각은 제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맞춰내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내가 먼저 웃었더니만 세상도 덩달아 웃더라. 서로가 닮아갈수록 행복해지는 축복이고 기쁨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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