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Toronto, 2007년1월10일(수)] 꿀~꿀꿀~..

  • 관리자 | 2007.01.14 19:00 | 조회 2446

    꿀~꿀꿀~ 돼지해

    박 남 석 (토론토)


    예부터 햇수와 순서를 헤아리고 가리기 위해 쓰이던 간지(干支)는 육십갑자의 나뉘어진 천간(天干)과 아래 단위를 이루는 지지(地支)의 조합인데 태음력(太陰曆)에서 정해(丁亥)는 간지의 스물 넷째이고 지지의 회두리 이다. 공중에 던진 윷가락 셋이 엎어지고 그 중 하나가 젖혀진 ‘도’의 곁 말로서도 불린 돼지는 오동통한 얼굴에 삐죽이 나온 주둥이, 콧구멍 뚫린 속까지 들춰 뵌 뚜껑 없는 들창코, 뒤뚱뒤뚱 인 걸음걸이는 네다리가 짧은 탓에 살찐 몸뚱이가 버겁기도 하다. 하늘로 문이 난 우릿간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먹이를 구하다가 꿀꿀거리던 목청이 잦아드니 이를 두고 해시(亥時: 21시~23시)라 일렀다.

    달의 운행주기에 바탕을 둔 절월력(節月曆)에서 삭망월(朔望月)은 29일12시44분2초이고 태양력보다 날수10.575162일이 짧아 5년에 두 번의 비율로 평년보다 한 달을 더하여 윤달을 두고 시차를 조정한다. 시간과 방위(方位)를 가리키는 십이지(十二支)가 불교 미술에서는 약사여래(藥師如來)의 권속으로서 십이지신장(十二支神將)의 부릅뜬 눈과 마주치기 무섭게 표현된다. 띠 동물의 상징적인 의미와 연계하여 털 있는 동물의 날이 설날인 해는 풍년이 들고, 반대의 경우엔 흉년이 된다는 주술적 관념은 믿거나 말거나.

    빈곤은 나라님도 구제할 도리가 없었지만 팥이 듬뿍 섞인 꽁보리밥과 돼지고기 반근은 다리가 퉁퉁 부어 오른 각기병을 감쪽같이 낫게 하고 값싸게 건강을 지켜준 전래식이요법의 하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붉은색고기에 식상한 사람들의 백색고기 선호경향은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삼겹살 맛은 0.7Cm 두께로 저며 꽃불 위에서 세 번을 뒤집어 구워야 제 맛이 난다지만 새우젓을 곁들이면 먹던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쪼르륵 소리가 난다나 어쩐다나. 푸줏간의 돼지고기 값이 반등할 기미는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돼지는 부(富)와 복을 가져다 주는 재물 신으로 소원풀이 제사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여름철에 돼지고기를 먹고서 본전 찾기 어렵다던 통설은 가까운 옛날까지만 해도 진리에 가까웠다. 보관시설이나 방법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국민 건강을 계도하던 일이 부정한 동물로 여긴 종교적 견해와 맞물려 의식적으로 꺼리는 사람과 지역도 많다. 반면에 왕성한 생명력과 다복을 상징하는 부적으로서 몸에 지니고, 꿈속에서 만나면 더없이 기뻐하는 사람들도 이에 못지 않다.

    돼지는 민속(民俗)에서 재산이나 부의 근원이며 제례(祭禮)에선 신성한 동물의 상징이다. 설화에서 상서로운 징조로 표현되는 돼지꿈은 길몽으로 해석하면서도 젖줄 좋은 가운데 젖꼭지를 차지하기 위한 새끼돼지들의 몸싸움을 저돌적(猪突的)이라고 이른다. 가시 돋친 말로써 남의 가슴에 생채기 낼 일은 더더욱 아니다. 들은 귀는 천 년이고 말한 입은 사흘뿐이기 때문이다. 본디 하늘의 천봉원수(天蓬元帥)였으나 지나치게 술을 좋아한 나머지 큰 잘못을 저질러 세상으로 내어쫓긴 저팔계는 회심향도(回心向道)하여 천축으로 가는 길에 삼장법사를 도와 세상의 악을 없애고 평화를 심는 사명을 수행하지 않던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사람에게 찾아오는 성공이 게으른 자의 눈에는 행운으로 비친다. 생각과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운수일 터에 하 세월이 흘렀다고 바뀌지 않는 게 어디 그 뿐이랴. ‘황금 돼지해’ 예찬론은 저절로 굴러오는 재물 복을 타고난다느니,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한의 여가와 즐거움을 찾는 돼지야말로 행복을 터득한 동물이라고 야단이다. 삶이 고단하고 피곤하다는 방증이겠지만 기뻐하지만 마십시오, 슬픔이 옵니다. 슬퍼하지만 마십시오, 기쁨이 다가섭니다. 바라는 마음뿐 아니라 감사하고 만족할 줄도 알았으면 참 좋겠다. 꿀~꿀꿀~~.

    수정 삭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