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흘러 바다에”

  • 관리자 | 2006.06.05 11:05 | 조회 2277

    뉴욕에서 개최된 제13차 북미주 총연합회보(2006년 5월27~29일)에 실린 글입니다.

    “강 흘러 바다에”
    박 남 석 (7기, 캐나다동부ROTC연합회)

    화갑(華甲)의 華를 파자(破字)하면 십자(十字)가 여섯이고 일자(一字)가 하나 더 보입니다. 꽃피고 술이 익었는데

    병술(丙戌)개띠는 나이를 자꾸만 허물어 내립니다. 콧등을 찌푸린 풍년거지의 개념이 없는 반찬투정은 김치냉장고가

    다스려주기도 합니다. 얇게 저민 복어 회를 천계(天界)의 옥찬(玉餐)이라며 침이 마르고 밥 한 그릇 비우길 게눈

    감추듯이 하는 식성도 양이 적으면 귀한 대접 할 줄 아는 우리네입니다.

    술도 워낙 좋아하여 주선의 경지에 이른 시인의 한 줄 노래를 읊조려봅니다. 보슬비는 발을 차고 술에 물결 일었네

    (一簾踈雨酒生波). 지나치게 마시는 술에는 장사가 없다고 말하면 행여 그를 두고 술 마시는 사람이 자기 주량대로

    알고 마시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와 혼동하여 버르장머릴 거론해야 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쭙잖은 시비에

    휩싸이진 않았으나 술이 날 좋아하여 술 깰 날이 적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밥은 수저로, 반찬은 젓가락으로 먹어야 마땅한 줄 알지만 가끔씩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어련히 이어가는 삶이 그렇고 그렇다는 말처럼 인생은 판단이 아니라 해석이라기에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월백설백(月白雪白)의 매화는 늙을수록 품격이 높다는데 소리의 근본이 되는 분자운동을 전할 수 있는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기다릴 줄 아는 미물이 어느 면에서는 사람의 지식보다 훨씬 앞서있다고 들었습니다.

    시렁 눈 부채 손의 고집스런 만패불청(萬覇不聽)이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어쩌다가 반상의 매화육궁(梅花六宮)에서 한 수를 선떡 받듯이 하였더니 뺨 얻어맞을 각오하고 틈새를 비집는

    격고명금(擊鼓鳴金)의 훈수가 난공불락의 대세를 뒤흔들고 기울게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보는 천재를 이길 수

    없고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합디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도 하니 아름답고

    건강한 시간들을 다스려가는 밝은 마음에 웃음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소망하는 가운데 세상은 내가 느낀 대로 그게 다 일거라고 생각했던 우리들입니다. 먼 곳에서 찾던 것이

    두고 온 것임을 깨닫고 가던 길 뒤돌아 제 그림자를 앞세우고 오는 나를 먼발치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삶을 찾아 나섰던 일이 여 의롭진 않았어도 뛰어볼 만한 달리기였음을 고백합니다.

    애국 애족하는 마음에 결코 뒤지지 않던 우리가 자연의 순리를 신의 섭리로서 이해하는 개념과 인식의 차이에 엄청난

    괴리(乖離)가 있는 걸 부연함은 새삼스럽기만 하겠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지언정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은 되지 않아야 할 터인데 주저리주저리 혼잣말입니다. 따끈한 차 한잔 대접하고 싶은 여러분께 희망과 건강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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