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증유(未曾有)의 길'

  • 박남석 | 2016.07.28 09:26 | 조회 1634


    ‘미증유(未曾有)의 길’

    박 남 석 (7기, 전남대. 캐나다동부 ROTC연합회)

     

    선현(先賢)들의 말씀 중에 플라톤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관대한 것이 자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고 설파했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직선(直線)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曲線)은 신(神)의 것이다”했다. 성어(成語)에 되돌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의 ‘불여귀거(不如歸去)’도 있다. 예나 제나 고향을 떠나 향수에 사무친 사람들에게 환향(還鄕)할 것을 독려(督勵)한 말이렷다.

     

    영국민의 유럽연합탈퇴(Brexit)여부 투표결과 탈퇴를 지지한 유권자가 잔류를 주장한 유권자 48.1%보다 우세하다고 공식 발표됐다. 지난 4개월 동안에 격렬하게 이어진 갈등은 찬반 양측이 상대편을 서로 비난해가며 국론이 분열됐고 다양한 변수가 등장하면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혹시나 했던 기대감이 뛰어 넘지 못한 결과에 지구촌 경제, 정치계는 엄청난 파장과 여파가 예측을 불허한다. 통합과 개방일변도로 진행돼온 세계경제의 흐름이 숨 고르며 속도 조절을 하게 될 테다.

     

    그들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이민을 억제하고 주권을 되찾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EU의 솅겐조약에 명시된 ‘이동의 자유’ 때문에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이민통제가 어려운 만큼 이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EU를 떠나는 길밖에 없다는 주장에 51.9%가 공감한 것이다. 유럽연합에 연간 30조원 가까운 분담금을 내면서도 혜택은 적을 뿐더러 독일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EU의 각종 법규들에 옭매어 주권을 잃어버렸다는 인식도 EU를 떠나자는 목소리를 키웠다. 분담금을 EU에 내서 그리스 같은 재정위기국가를 지원하느니, 이를 국민복지와 향상에 전용하는 게 낫다는 것이 탈퇴파의 주장이었다.

     

    이제와 영국은 더 이상 유럽연합국가가 아니다.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를 제외하곤 모두 외국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금처럼 옹기종기 살만하게 된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서산에 해가 저물지 않았던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영화(榮華)를 어이 잊을 수가 있었으랴만, “LOVE EUROPE, NOT EU”를 표방해왔던 브렉시트(Brexit) 승리가 과연 영국이 택한 독립인가, 고립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너나없이 짙은 안개 속을 헤맬 수 있다는 안타까움에 밤잠을 설칠 것만 같다.

     

    브렉시트 소식이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며 어제(24일) 하루 시가총액 2,440조원이 증발됐다고 전한다.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금은 안전자산에 몰리고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는 긴급대책을 쏟아내며 EU중앙은행도 필요하면 유동성을 추가 공급하겠다하니 미국이 하반기에 금리인상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꿈틀거리고 있다. 시장이 격(激)하게 반응한 것은 브렉시트가 가져올 불확실성 때문일 테다. 저성장시대 경제는 모험보다 내실(內實)을 다져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기업도, 국가도 여느 때보다 비상한 각오가 절실하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복스(Vox)는 “브렉시트 결과를 ‘크리스마스에 찬성하는 칠면조(Turkey voting for Christmas)’라고 비유했다. 잡아먹힐 걸 알면서도 크리스마스가 좋다는 칠면조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한 영국이나 도긴개긴이란 얘기다. 경제는 위축되고, 위상은 하락하고 불확실성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해 상충(相衝)으로 인한 분열·악재·갈등으로 총체적 위기인 셈이다. 전 세계가 만류했건만… 그러나 영국인들은 불합리한 선택을 했다.”

     

    인류의 역사는 흥망성쇠(興亡盛衰)와 헤아릴 수 없는 부침(浮沈)을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마른장마에 내리는 소낙비는 쇠등을 다툰다지만, 사람은 상부상조(相扶相助)하며 살아가는 사회적동물이다. 세상만사가 ‘네 덕(德), 내 탓’이랄 수 있다면 오죽이련만, 이번 사태를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해선 아니 될 일이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이민자 수를 줄일 수 있다”고 만천하에 공언해 왔던 보수당 진영의 의원이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정부가 이민통제를 강화할 것이라고만 공약했지 이민자를 줄이겠다고 말하진 않았다”고 발뺌한다는 소식이 실소를 머금게 한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오만함에 무너져 내린 캐머런수상은 그가 졸업한 최고 명문 이튼칼리지 동기생 외엔 그 누구의 조언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하니 글쎄다.

     

    ‘내가 바담 풍(風)하더라도 너는 바담 풍(風)하라’던 우스갯말이 새삼스러울 정도다. 국제관계는 사안에 따라 대립과 협력을 반복해가며 경쟁국간의 협력분야도 많다고 한다. 심지어는 적대국 사이에서도 협력이 이뤄진다고도 한다. 정치가는 득표를 위해 실현가능성이 불확실한 계획에 편승하고 민심을 자극하는데 주저하지 않기도 한다. 당장 엎질러진 문제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브렉시트 배경 중 하나가 서민·블루칼라의 엘리트·고소득층에 대한 분노인데 신자유주의 노선 아래 급성장한 미국 월가를 향한 미국인들의 분노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는 언론매체의 견해가 부쩍 심심찮다.

     

    영락없는 나팔처럼 생긴 나팔꽃은 한 여름에 피며 꽃은 흰색, 진한 자색, 빨간색 등 예쁜 차림새로 ‘아침 해가 오르면서 활짝 피어난다고’ 영어이름은 Morning Glory다. “담벼락을 부여잡고 / 부르는 노래는 무엇일까? / 한사코 달아나는 하늘의 꼬리를 / 잡고 늘어지며 부르는 노래는 무엇일까? / 나팔 소리에 귀 시끄러운 세상 / 이제도 더 불러야 할 노래가 있느냐.” - 문효치 /《나팔꽃》-

     

    2016년 8월호 Leader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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