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가윗날'

  • 박남석 | 2016.09.17 07:50 | 조회 1787

     

    ‘한가윗날’

    박 남 석 (토론토)


    오곡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어가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다.《농가월령가》8월령에 보면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명절 쉬어보세. 신도주(新稻酒), 박나물, 올벼송편,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祭物)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라고 또렷이 적혀있다. 오면가면 이웃들과 서로서로 나눌 줄 아는 우리네 아름다운 전통과 풍습은 정겹기 짝이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하여라.” 휘영청 달 밝은 한가윗날 온 식구가 오순도순 모여앉아 송편을 빚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정감이 넘쳐난다. 향긋한 솔잎을 깔고 쪄낸 정성을 차례 상에 올리면 조상님도 흐뭇해하실 테다. 밤새워가며 반달모양으로 곱디곱게 빚으시던 울 엄니의 손끝 맛이 비교할 바 없는 일품이었는데… 가슴 한편에 시린 듯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 잡힌 한가윗날의 송편이다.


    음식은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섭취해야 마땅하지만 골라먹는 재미도 여간 아니었다. 저마다의 호불호(好不好)가 엇갈리긴 하지만 철없던 그땐 다디달고 구수한 음식에 입맛이 당겼다. 명절이면 일가친척집 심부름 다녀오는 건 맏이의 당연한 일이었다. 만월표(滿月標)검정고무신이 철떡거리긴 했어도 “수고했다!”시며 머릴 쓰다듬고 안아주시던 어머님의 따스한 손길이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난다.


    뉘라서 힘겨운 세월 속에 절절하게 살아온 시절이 없으랴만 ‘아~ 뜬구름 하나’ 하던 이들도 나이 들면 무상한 세월을 탓하기도 한다. 정든 고향을 멀리 떠나온 몸이라서 간절함은 더할는지 모른다. 무어니 해도 뭉근하니 끓인 된장찌개의 맛이 어우러지듯 즐거운 마음가짐이 가장 큰 보약인 줄 안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발사이로 성긴 비 떨어져 술잔에 물결 일었었지.(一簾疏雨酒生波)”하는 이색(李穡)의 술자리에 비바람 들이치지 않았다면 그윽한 분위기를 어이 반추해낼 수 있었을까마는… 백약의 으뜸이 시름을 씻어내기에 더없이 좋다고 하는데 과문(寡聞)한 탓이려니 한다.  


    젊은이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하고 어른들은 어른 노릇하기 힘들다고 하는 세상이다. 행위의 주체와 객체(客體) 모두에게 존재감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젠 나이가 많다고 어린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사회가 아닌지 오래됐다. 나이든 이들이 젊은 세대의 존경을 받는 것은 그들이 미처 겪지 못한 지혜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너나없이 힘들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야하지 않을는지. 하지만,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무엇일까 사유(思惟)해 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세상에는 우리 두 눈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산화탄소의 93%를 흡수, 온난화를 막는 역할을 해온 바다도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그 저장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구의 기후변화에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면서- “By 2085 most cities will be too hot to host Summer Olympics” -대문짝만한 뉴스발표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196개국 대표들이 제21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합의된 협정은 산업화 이전 수준과 비교해 평균 2°C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니 말이다.  


    꿈에 떡 얻어먹기보다 어렵다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을 ‘변장한 축복’(A BLESSING IN DISGUISE)으로 영어에서는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過猶不及)는 깊은 뜻을 혼잣말처럼 되새겨본다. 웅크린 채 새우잠을 자면서도 고래 꿈을 꾸는 우리의 마음가짐이여~ 감사와 행복을 생각하고 살았으면 참 좋겠다.


    “작년에도 9월에 구월산을 지나고 (昨年九月過九月)

    올해도 9월에 구월산을 지났네 (今年九月過九月)

    해마다 9월에 구월산을 지나니 (年年九月過九月)

    구월산 경치는 늘 9월이네.” (九月山光長九月)

    -《구월산(九月山)》/ 김병연(金炳淵) -


    2016년 9월16일 K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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