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의 계절'

  • 박남석 | 2016.10.15 07:30 | 조회 1770

    ‘감사의 계절’

      박 남 석 (토론토)  


    섭리하시는 창조주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웃과 함께 더불어 넉넉하게 나눌 줄 아는 우리들이다. 지난 9월에는 한가위가 있어 넉넉했고, 10월엔 추수감사절이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감사하는 마음’들이 삶의 근간으로 삼고 상부상조(相扶相助)해가며 살아왔음이다.


    뒤돌아보면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부모님의 몸을 빌려 세상에 태어났고 살아온 날들이 다 창조주의 은혜였다. 몸이 아프기도 했지만 성심성의를 다하는 의사를 만나 치료하게 되었고, 현명한 스승을 만나 일깨워주신 고마움에도 감사할 일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창조주의 은혜 안에서 이뤄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생이 늘 내 뜻과는 다르게 진행됐다할지언정 위안을 주는 음악처럼, 나를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들이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줄로 안다. 때론 무심코 투덜거리며 쓸데없는 원망도 내뱉곤 하겠지만…. 기쁜 일에는 무심한 듯해도 어렵고 힘든 일에는 발 벗고 나서주는 우정에도 감사드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인 울 엄니가 겪는 아린 슬픔과 고통을 대신해드리진 못해도 곁에서 보살펴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작은 위안을 삼는다.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되돌아보게 되고 삶의 온기가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다. 이제는 헤진 옷처럼 남루해보일는지 모르지만, 언젠간 다가올 낯선 처지에도 의연해야지 마음먹긴 하지만 뉘라서 어이 장담할 순 없는 일일 것이다.


    어동육서(魚東肉西), 탕류(湯類)는 육탕, 소탕(素湯), 어탕(魚湯)의 순(順)이고, 좌포우혜(左鮑右醯),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의 차례 상(床)에서 술잔은 좌측, 떡국은 우측에 놓이더라만… 부모님 살아생전에 제철과일을 담은 한 그릇이 보다 마땅한 도리인 줄로 안다. 화려한 색상의 꽃들이 있어도 ‘함께 있어 아름다운 안개꽃처럼’ 받들어 모실 수 있다면 오죽이겠다. 그냥 내 생각만으로 지나칠 일은 결코 아니다.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옛것을 익히다보면 그 옛것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단풍잎을 보다가 듣는 에릭 클립튼의 <Tears in Heaven, 천국의 눈물>노래에 담긴 사연도 눈물이 겹다. 가슴 깊은 곳에서 절절히 사무쳐있음을 느끼게 한다. 지금 우리네 주위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이며,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파리가 웽웽거리며 달려듦을 뜻’하는 파파라치 등쌀에 당사자들은 알게 모르게 바짝 긴장한다는 소식이 이젠 낯선 풍경이 아니라고 한다. 부정부패의 척결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픈 게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겠지만, 끼니를 먹지 말라는 게 아니고, 일을 할 때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고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엄밀히 검토하고 생각해보고 집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혈세(血稅) 아까운 줄 알아야 할 일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문제의 심각성이 하늘 높은 줄 몰랐으니 말이다.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쥐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뜨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야 알고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정호승 시인의《감사하다》전문]  


    2016년 10월14일 K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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