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모곡(思母曲)'

  • 박남석 | 2016.10.21 06:00 | 조회 1763

     

    사모곡(思母曲)

    박 남 석 (토론토)

     

    더딘 줄만 알았던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음을 실감한다. 추수감사절연휴에 즈음하여 가을하늘아래 나무들이 색동옷을 곱게 차려 입었다. Algonquin주립공원의 울울창창한 단풍구경을 어머님 모시고 함께 다녀오고 평화마라톤에서도 달리고 싶어 하셨는데… 자연은 지음 받은 사람들이 겸허한 마음가짐을 지니게 해준다.

     

    “어버이 살아계실 때에 섬길 일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정철의《송강가사(松江歌辭)》중에서] ‘내리사랑이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핑계 삼지 말고 ‘때늦은 후회를 하기 전에 섬김을 다하라’는 말씀이겠지요.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말하지만, 연로하신 모친께서 편치 않으신 몸으로 병상에 계시니 가슴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다. 질곡(桎梏)의 세월도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건강을 유지해야 마땅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멈춰 서게 할 순 없다. 잘 익은 홍시(紅柿)가 먹음직해 침을 꿀꺽 삼킬지언정 어머님께서 맛있게 드실 수가 없으니 가게 앞을 먼 산 보듯이 지나치는 자신을 발견한다. 풍차는 바람이 몰아치는 길목에 세운다던데 돈키호테에게 여쭈면 ‘염장청어(鹽藏鯖魚)’를 만병통치약이라며 내밀는지 모르겠다.

     

    세상소풍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떠날 준비하시는 엄니의 곁을 지켜가면서 만감(萬感)이 교차한다. 신부님과 수녀님을 모시고 병실까지 찾아 위로와 기도를 올려주신 성당 교우여러분들과 밤낮없이 환우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아낌없는 노력에도 감사드린다. 부모님의 애간장을 태우고도 불효인 줄 미처 몰랐던 불효자식의 다하지 못한 자책(自責)과 번민이 오가며 수많은 후회를 불러일으킨다.

     

    안개꽃처럼 함께 있어 아름다웠던 세상살이에도 때론 어렵고 힘든 시간을 어이 겪지 않으셨을까마는 “이 사람 될 놈아~” 꾸짖어주시는 목소리라도 들려주실 수 있다면 오죽이겠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자나 깨나 베풀어주신 어머님의 사랑과 은혜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짐짓 멀리서 찾던 게 두고 온 것임을 깨닫고 가던 길 뒤돌아서 그림자를 앞세우고 오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한 숟갈을 스스로 떠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삼켜 넘길 기력만 있어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가꿔주시며 힘과 용기, 사랑을 안겨주신 부모님 높이 받들어 모시고파도 Sunnybrook Hospital의 Palliative Care Unit(PCU)에서 야위고 지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해 계시니 서러움이 눈시울을 적셔준다. 단풍잎사이로 가을햇살이 눈부셔도 조용히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하는 몸과 마음이 아픈 환우들이 어이하여 그리도 많은지요.

     

    기도드리며 의지함은 더 가까이 주님의 품안에 안기시길 원하는 다소곳한 마음가짐뿐이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위로와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빌어마지 않으시는 기도말씀에 마음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낫같이 들 리가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은 없습니다. 아아~ 세상 사람들이여!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은 없습니다.” - 작자미상 / 고려시대《사모곡(思母曲)》-

     

    2016년 10월21일 K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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