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시안타(適時安打)'

  • 박남석 | 2016.11.25 08:37 | 조회 1700

    ‘적시안타(適時安打)’

                                                                박 남 석 (토론토) 

     

    엊그제까지도 바람은 감미롭고 햇살은 눈부셨는데 뒤늦게 찾아든 동장군과 흩날리는 눈보라가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올해로 112년째 이어온 루돌프사슴과 산타할아버지 가두행진에 또렷또렷 빛나는 눈망울을 깜박이며 환호성을 지르는 동심은 부풀었고 그까짓 영하의 추위쯤은 아랑곳하지 않아 뵌다. TV화면에 비친 CFL경기장 응원석의 함성도 지축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설원(雪原)의 내리막을 질주하듯 미끄러져 내리는 스키어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선물이겠지만 교통체증을 유발시키는 눈 소식이 한편으론 달갑잖기도 할 테다. 이해상충(利害相衝)하는 우리네 일상을 열거하자면 끝 간 데가 있으려나 싶기도 하다. 토론토교통위원회(TTC)의 $2,310,000,000 적자운영보전을 위한 요금인상안이 적시(適時)에 의회결정으로 내려졌다. 만지작거릴 대응카드가 없는 이용객들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울며 겨자 먹게 될 것이고, 공공요금 인상은 인플레이션의 견인차 노릇과 도미노현상을 가져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다. 


    무릇 세상일이란 계획하거나 예상한 대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닌 줄로 안다.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울고 싶은데 매 때리는 경우도 없잖다. 방만한 운영을 구조조정해가는 면을 보여주기보단 야금야금 가격인상이 최상의 방법은 아닐 터에 자기 배부르고 먹긴 싫어도 남 주길 아까워하는 욕심을 그 무엇과 비교할 바 있단 말인가. 하긴 단돈 10센트 인상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만 같아 초라해진 느낌이다.


    어쩐지 듣기 민망하고 거북한 표현들이 거침없이 터져 나올 것도 같다. 닭이 벌레를 쪼아 먹는데 득실(得失)을 따질 것이 없다는 ‘계충득실’(鷄蟲得失)과 새벽밥을 짓는 사이 꿈꾸는 ‘일취지몽’(一炊之夢)에 빗대어진 인생살이는 그 옛날에도 있었다지만 말이다. 야구경기에서 ‘적시안타’(適時安打)는 관중의 환호를 불러일으키지만, CFL 경기와 산타퍼레이드에 열광한 틈새를 노린 약삭빠른 행동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편협한 생각이었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진심보다 아부를 앞세운 사람이 잘 나가는 세상이라지만, 어수선한 시국은 국민들의 인내를 체념으로 돌려놓는 중이다. 꿈속에서라도 예기치도 않은 국내외의 복잡하고 답답하게 꼬인 상황이지만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다. 정치인들의 얕은 술수에 놀아난다면 상실감과 서러움이 더할 것이다. 

     

    제멋대로 하루에 한마디씩 쏟아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은 사람들도 좋아 뵈진 않는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이 나라가 이러다 어디로 가려하는지… 몸도 마음도 춥지만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뜨거운 열기와 냉철한 판단으로 난국을 타개하고 이겨냈으면 오죽이겠다. 신나고 재미있는 일 뭐가 없으려나싶기도 하지만 참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행하자.


    “조각배에는 산색이 비치고, 숲에는 가을이 가득(舟滿山光秋滿林) / 온 세상을 노님도 싫증나고 돌아가고픈 마음 재촉하네.(天涯游倦促歸心) / 고향을 떠나 겨울과 여름을 몇 번이나 보냈던가.(離鄕幾度寒和暑) / 두견새 울음에 저미는 마음 가눌 길 없어라(惱煞鵑啼意不禁)” / - 황군벽(黃君壁)의《추강귀도(秋江歸棹)》- 

     

    2016년 11월25일 KR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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