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의 눈

  • 박남석 | 2008.10.26 17:08 | 조회 2025

    태풍의 눈
    박 남 석 (토론토)

    참새 한 마리 무게 때문에 휘청거리는 갈대를 보았다.

    뒤숭숭한 국내외의 경기 위축전망으로 인해 각국정부의 노력과 금융구제소식에 대한 추이가

    시시각각 주요뉴스로 다뤄지면서 사태의 귀추를 예의주시하는 국제사회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신보수주의(neocon)를 신뢰할 수 없게 된 소비자들의 이유 있는 불안을 귀담아듣지 않더라도

    정부구제금융 방안은 사실상 대안이 없을 만치 사태의 시급함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정작 태풍의 중심에는 적막한 고요가 감돈다.

    가장 힘들다고 여길 때가 사실은 기회라고 쉽게 얘길 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그저 얻어지는 건 더구나 아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겠지만 FRB의 유례없는 대책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감은 확산되고 넘실대는 온갖 루머에 어지럽기까지 하다.

    공포와 불신을 확대재생산한 투자은행의 금융위기가

    전대미문의 구제 금융으로 최악의 상황을 탈피하는 데는 도움을 주었지만

    기업 활동은 위축되고 고용시장은 악화되어 실물경제상황을 회복세로 전환해 줄 만큼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견해가 너나없이 지배적이다.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의식의 결여를 말하기에 앞서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곤혹스런 현 위기에

    백약이 무효라는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파생상품에 따른 위기인 만큼

    또 다른 부실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플라시보 효과에 의해 일시적으로 상태가 나아진 것처럼 느낄 수 있겠으나

    “투자은행에 편중되었던 주요경제지표의 개선보다는

    일반소비자들이 갖는 심리적인 충격의 치유가 더 시급하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중소기업들의 줄도산과 은행들이 부실지원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은

    눈이 내릴 때 마당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유된다.

    모두 다 놓치고 싶지 않은 굴뚝같던 마음도 알고 나면 과욕에 눈먼 어리석음 때문일 것이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공포 심리는 여전한 살얼음판이고 바닥을 모르는 장세를 보인다.

    지난세월을 말하면 흔해빠진 얘기라고 여기기 너무 쉽지만

    리먼Bros.메릴린치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시절도 없진 않았다.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지적처럼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상황은 실질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까마귀가 보름달을 가로질러도 세상에 어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산홍엽(滿山紅葉)에 햇빛만 찾아들면 멋진 사진을 얻겠다싶었는데

    구름사이로 고갤 내밀지 않아 실망했다는 구차한 변명일랑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시련을 극복해나가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고 모든 게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는 세상이다.

    가문(家門)덕에 대접받는 사람을 나무랄 순 없지만

    가난한 집의 신주(神主)마저 굶어서야 아니 될 일이다.

    많이 쓴 글보다 고친 글이 낫고, 고친 글보단 다듬어진 글이 낫낫해도

    무얼 하나 잘못 누르면 바로 없어져버리니 거참이다.

    하기야 꿈속에선 식은 죽 먹기더니 만.......

    The Last Rose Of Summer - Andre Rieu

    2008년10월27일(월) Toronto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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