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짐짓 모르는바 아니로되...

  • 박남석 | 2008.05.28 15:51 | 조회 2174


    짐짓 모르는바 아니로되
    박 남 석 (토론토)
    “에스키모인은 늑대를 사냥할 때 날카로운 칼날에 동물의 피를 발라 눈 위에 세워둔다고 한다.
    냄새를 맡고 모여든 늑대들이 피를 핥다가 자신의 혀를 베이고,
    추운 날씨 탓에 혀가 마비된 그들은 자신의 혀에서 피가 흘러나와도
    누구의 피 인줄 모르고 계속 칼끝을 핥다가 결국 비극적으로 죽어간다.”고 익혀들었다.
    ‘스님머리에 머리핀 꽂는 일’과 ‘대통령의 입 막기’가 어렵다는 우스갯말이 인구에 회자된 시절도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을 고자누룩하던 일본정부가 독도는 자기네 영토라며 주장하고 나선다.
    불행한 과거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우리 사회의 낡은 진보를 시험해보는 것이다.
    정부외교당국의 엄중하고도 합리적인 반론과 반증의 제시는 물론
    그 대책마련과 후속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다.
    제 것을 올바로 지키며 가꿔나가는 게 애국 애족하는 길이다.
    광우병의심 쇠고기도 많이 먹지 않으면 감염되지 않는다는
    FDA의 안이한 인식과 해명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황희정승의 엉터리재판은 ‘이쪽도 옳고 저쪽도 맞다’며 양쪽의 기대심리를 충족시켰다더니만
    실용정부는 쇠고기협상이 한미자유무역체결에 선결적인 것으로 인식했나보다.
    ‘강요가 아닌 소비자의 선택’으로 호도하며 올인 하는 접근방식은 마치 잔나비가 밥 짓는 듯하다.
    ‘천하를 얻는다 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짝도 소용없는 줄 알자.
    어슷비슷한 얘길 서로 나누다 ‘x도 모르면서 xx보고 탱자! 탱자! 외치면 까칠한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며느리 자라 시어미 되니 시어미티를 더 잘한다지만 줄잡아 노력할 일이다.
    발길이 끊긴 손님을 무작정 기다리는 통닭집도, 오리탕 집도
    어쩌다 이 모양 요지경인지 죽을 맛이라며 아우성이다.
    미주왈(味酒曰), 돼지 멱따는 소리가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중국의 쓰촨(四川省)지역 대지진과 미얀마 사이클론피해에 60억지구촌이 아픔을 나누자.
    살아남은 이재민들의 생존의지가 고통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와 구호에 인색하지 않아야겠다.
    정치적 이념과 주의가 다를 뿐인데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하늘의 의지표현이라며
    애잔한 가슴에 못을 박는 행여나 몹쓸 소린 삼갔으면 좋겠다.
    여진(餘震)과 전염병공포에서 그들에게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펼치는 것이 급선무이고 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꽃밭에는 하루해가 바쁜 나팔꽃만 피고 지는 게 아니다.
    활짝 핀 꽃이 있는가 하면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꽃송이도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묵시적인 기록도 없진 않다.
    “솥단지의 끓는 물을 식히려고 부채질은 열심히 하는데, 정작 빨갛게 달아오른 장작은 그냥 그대로 둔다.”는
    표현을 보면 예나 제나 진언(進言)은 먼 산보고 아뢰듯이 어벌쩡했나보다.
    입은 하나이고, 귀를 둘로 작정하신 창조주의 숨은 뜻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몫일 터인데, 거참.
    아홉 굽이진 구멍의 구슬 꿰는 방법을 스스럼없이 여쭙던 공자는
    ‘조용히 생각하십시오, 생각을 조용히 하십시오.(密爾思之,思之密爾)’라는 대답에 깨달음을 얻고
    개미허리에다 실을 매어 구멍의 한쪽 끝에 밀어 넣고
    다른 쪽 출구되는 곳에서 꿀로 개미를 유인해 꿰었다고 한다.
    서 말 구슬도 꿰어야 보배인 줄 짐짓 모르는바 아니로되 다시금 새겨듣고픈 공자천주(孔子穿珠)이다.




    수정 삭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