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 박남석 | 2008.01.03 17:25 | 조회 2065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박 남 석 (토론토)

    희망찬 새해는 간지(干支)의 스물 다섯 번째인 무자(戊子), 쥐 해이다.

    한 몸에 앞뒤 다른 발가락 수를 가진 쥐는 발이 섬 약하여 잔걸음에 능숙하고,

    뾰족이 나온 주둥이에 송곳니가 없이 앞니로 쏠아대는 포유설치류(哺乳齧齒類)이다.

    좁쌀눈에 겁이 많고 민첩하지만 호박 잎에 청개구리가 뛰어오른듯한 면이 아주 없지는 않다.

    앉은장사에 선 동무가 여럿이라서 좌불안석(座不安席)이어도

    서씨(鼠氏)불패신화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좌고우면(左顧右眄)을 생활신조의 제일로 삼고 간신히 피해온 쥐덫 밭도

    깜박하여 잊기를 잘하는 쥐정신일지나, 자식사랑이 지극함을 두고 서산(鼠算)이라 한다.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자는 주제의 설정과 결과는 어차피 윤색되게 마련이지만,

    극진히 대접하여서 불러줘도 양상군자(梁上君子)

    완곡하게 이르는 어감과 숨겨진 뜻이 왠지 그렇고 그러하다.

    밤낮을 가리잖은 천정파티에서 온통 휘둘리며 뜬눈으로 날밤을 지새워도 피곤할 줄 모르니

    그것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까다롭잖은 식성인데도 쥐 젖만큼 먹고 자란 탓에 작고 앙증스러운 몸피가 쥐방울만하다.

    고양이 밥을 덜미에 짊어지고 쏘다니는지 조바심에 놀란가슴은 매사에 주저함이 배어나고,

    시력이 좋기로 이름난 날짐승과

    바람을 가르며 달려드는 파충류의 소리 없는 폭력에 ()이 콩알만한지 오래다.

    운수가 사나운 날에는 소림사무술을 익힌 고양이에게

    날 잡아봐라약 올리다 말고 다리에 쥐나도록 쫓기기도 한다.

    삼십육계 줄행랑으로 위기를 벗어나 두 번 세상 살면서도

    이래저래 쥐구멍을 드나들어야 하는 무너져 내린 심정을 뉘라서 알랴마는...

    세상 일은 99%의 예측 가능한 일과 오직 1%뿐인 창조주의 숨은 뜻이 있다고 한다.

    선잠에 천정 위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나도 눈이 말똥말똥해지면서 지구의 축()이 도는

    굉음(宏音)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심각한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지 모른다.

    닥쳐올 재난에 대응하는 미물들의 본능은 어느 면에선 인간의 지식보다 앞선 면이 없잖다.

    뜻하지 않는 곳에서 쥐들의 집단이동을 목격하거든

    노아의 방주에 편승하거나 높은 산으로 피신을 서둘 일이다.

    무서운 비바람이나 홍수가 머지않아 들이닥칠 전조이기 때문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선입견을 불식시키는데 있어서도 사람들은 좀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인류사회에서 기능문명의 최첨단기술인 컴퓨터는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열어간다.

    어린이 눈높이로서 세상을 바라본 디즈니의 상상력은

    꿈과 환상을 안겨주면서 비즈니스와 결합된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마법의 성앞에서 미키를 껴안으며 웃음과 감동을 갖고 싶어하는 어린이들의 시선과 흥미를

    한꺼번에 집중시키는데 이보다 더한 캐릭터가 있을는지.

    두고 쓰던 옛말에 마누라와 서생원이 먹는 것을 아까워하는 자린 고비가 마름을 뺨치고,

    쫓기다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쥐는 도리어 고양이를 해친다고 했다.

    안 봐도 비디오이고 두말하면 군소리일 터에

    먼 산보듯 일러주고픈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다.

    쥐코밥상에서 좁혀 지내던 자신을 다스려낼 줄도 알고,

    이웃을 위해서 솟대 하나쯤 마음 속에 밝히려는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곳에 틀림이 없다.

    찍 찍찍

    年年年去無窮去 / 日日日來不盡來 / 年去月來來又去 / 天時人事此中催 /

    是是非非非是是 / 是非非是非非是 / 是非非是是非非 / 是是非非是是非 /“

    [是是非非 炳淵]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시시비비 김 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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