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아침에

  • 박남석 | 2007.08.20 06:00 | 조회 2016
    가을 아침에 / 김소월


    어둑한 퍼스렷한 하늘 아래서
    회색(灰色)의 지붕들은 번쩍거리며,
    성깃한 섭나무의 드문 수풀을
    바람은 오다가다 울며 만날 때,
    보일락말락하는 멧골에서는
    안개가 어스러히 흘러 쌓여라.

    아아 이는 찬비 온 새벽이러라.
    냇물도 잎새 아래 얼어붙누나.
    눈물에 쌓여 오는 모든 기억(記憶)은
    피흘린 상처(傷處)조차 아직 새로운
    가주난 아기같이 울며 서두는
    내 영(靈)을 에워싸고 속살거려라.

    그대의 가슴속이 가볍던 날
    그리운 그 한때는 언제였었노!


    가을 저녁에 / 김소월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 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 마을은
    성긋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言約)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 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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