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의 이야기] 인생의 길잡이 '선데이 서울'

  • 김장렬 | 2007.09.04 19:10 | 조회 1951

    중학교에 입학해서 한 친구를 사귀었다. 스무 살이 넘은 누나가 있는 친구였는데, 그 집엔 ‘선데이 서울’이라는 잡지가 방 한 귀퉁이에 세 뼘쯤 쌓여 있었다. 친구 집에 가서 친구하고 하고는 놀지 않고 하루 종일 ‘선데이 서울’하고 놀았다.

    우리 고모 방 달력에서나 볼 수 있는 여자들의 얘기가 죄다 거기에 있었다. 남정임 윤정희 문희 등.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효녀고, 또 누구는 언제 어떤 영화를 찍을 것인지. 그밖에 다른 기사들도 사랑과 배신, 연애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었다.

    다음날에도 나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첫날 그 재미있는 책을 다 보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도 기회를 봐서 서너 번은 더 놀러 갔을 것이다. 갈 때마다 친구하고는 놀지 않고 ‘선데이 서울’하고만 놀았다. 그래서 거기에 쌓여 있는 그것을 어느 한 권 빼놓지 않고 다 읽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내가 어른들의 세계를 모두 알아버리고, 이 땅 배우들에 대해 살아 움직이는 백과서전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이 더워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어른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언어를 열 세 살 산골 소년이 내 인생의 길잡이 ‘선데이 서울’을 통해 배워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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