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의 이야기] 잉크병이 얼어터지던 밤

  • 김장렬 | 2007.09.04 19:28 | 조회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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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강원 봉평 이효석 문학관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만난 후배 소설가가 무슨 얘기 끝엔가 “형, 잉크가 얼어요?”하고 물었다. 당연히 언다고 하자 그는 다른 것도 아니고, 어떻게 글씨를 쓰는 잉크가 얼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직 마흔이 안된 그는 멋으로 만년필은 써봤어도 양철 펜촉 끝에 잉크를 묻혀 글씨를 써본 세대가 아닌 것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며 우리는 시커먼 교복을 입고 가방 속에 펜대와 잉크를 넣어 다녔다. 펜대가 없으면 ‘모나미 볼펜’ 뒤꼭지에 펜촉을 끼워 쓰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대관령의 추위는 매서워서 낮동안 패놓은 참나무 장작조차 ‘컫치?소리를 내며 얼어버리는 밤, 윗목 책상 위의 잉크병이 우풍에 얼어 터지기도 했다. 그걸 모르고 그냥 챙기거나, 뚜껑을 제대로 안 닫은 잉크병을 넣었다가 책 모서리마다 새파랗게 잉크물이 들던 낭패스러운 경험도 봤다.

    그때 볼펜은 글씨체를 나쁘게 한다며 꼭 펜으로만 글씨를 쓰게 하던 아버지같던 선생님도 이제는 참 많이 늙으셨을 것이다. 더러 읍내에서 보아도 약주 한잔 대접 못하고 세월만 흘러가고 말았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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