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등목의 즐거움

  • 김장렬 | 2007.09.04 19:30 | 조회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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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여름이면 등목을 참 많이 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대여섯 번 할 때도 있다. 동생과 함께 마당가 그늘에 금을 그어놓고 땅 따먹기를 하다가도 조금만 더우면 우물가에 엎드려 형제가 서로 등에 물을 뿌려주었다.

    우리 집 우물 물은 너무도 차가워 등목을 할 때 햇볕에 데운 물을 반쯤 섞어 써야 하는데도, 이 개구쟁이 형제들은 서로 찬물 잘 참기 내기를 하느라 얼음처럼 차가운 지하수를 바로 등에 뿌려대곤 했다.

    원래 등목은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엎드린 사람의 바지가 젖지 않게 얌전하게 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 등목을 시작하면 서로 등판에 오싹 소름이 돋을 때까지 찬물을 뿌려댔다. 등목이 아니라 옷을 입은 채 목욕을 한 것처럼 바지도 흠뻑 젖고 만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서울에 올라오면서 등목의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서울에서는 등목을 할 일도 없었고, 할 곳도 없었다. 우선 등목을 할만한 마당 있는 집을 갖지 못했다. 아니, 가졌다 하더라도 도시의 삶이라는게 도시 등목과는 어울리지 않아 지금처럼 줄창 욕실에서 샤워만 했는지 모른다. 등목은 역시 고향집 마당에서 해야 제 맛인 것이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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