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길 / 김용택

  • 박남석 | 2007.06.17 12:26 | 조회 2180




    나는 도시락을 들고 십 리 강 길을 걸어 집에 오고 학교에 갔다.
    길은 아름다웠다.
    눈이 오고, 오리가 날고, 작은 새들이 내 앞을 날아가고,
    다람쥐가 바위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진달래가 피었으며,
    산벚꽃이 피었다가 강물에 지고, 들국화가 피고,
    아, 비바람이 불어오고, 눈보라가 쳤다.
    내가 다니는 길은 천국이었다.
    가을날에 단풍, 깊은 물에 느릿느릿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푸르고 시린 하늘을 날아오르던 물오리들,
    아침 이슬에 반짝이는 풀잎들, 지는 햇살 아래 눈이 부신 억새들,
    내가 보는 것들이 다 말이 되고, 시가 되었다.
    나는 십 리 강 길이 너무나 짧았다.
    내 발길에 걸린 자갈들이 다그락 다그락 몸을 뒤채는 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걸었던 그 강 길 끝에서 들리던 아이들 떠드는 소리......
    오리가 물을 차고 날아오르던 소리,
    오! 가을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던 오리들의 눈이 부신 날개짓이여!
    나는 그들 곁에 눈부시게 있었다.


    그 길 / 김용택 ('김용택 시인의 풍경일기- 가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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