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이별

  • 박남석 | 2007.05.10 06:15 | 조회 2058

    아주 추운 겨울이였습니다. 몇달째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할머니께서 집으로 돌아오시던 날, 아빠는 온종일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올 겨울을 넘기지 못할것이라는 말을 담당 의사로부터 들었기 때문입니다. 몇달 동안 병원 생활을 하시고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거동도 못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떠날 시간을 예감이라도 한듯 아버지 손을 붙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무래도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거 같구나."
    "어머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할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아버지는 소리없이 우셨습니다.

    할머니는 날로 쇠약해졌습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할머니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습니다. 허지만 할머니께서는 기적처럼 그해 겨울을 이겨 내셨습니다. 6월의 어느 화창한 날,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예고한 날보다 반년이나 더 사셨습니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나서 엄마는 장롱 속을 정리했습니다.
    "엄마, 우리가 이런 거, 할머니가 정말 모르셨을까?"
    "모르셨을거야, 몇 달을 마루에도 한번 못 나오시고 누워만 계셨던 분이 뭘 아셨겠어? 나중엔 엄마 얼굴도 못 알아보셨는데,"

    우리 가족은 6월의 초여름에도 할머니 방에 들어갈 때마다 겨울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장갑을 끼고 목도리까지 두른 채 할머니 방에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차가운 얼음을 만지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 손을 잡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겨울이여서 손이 차갑다는 것을 느끼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겨울이 간것을 알면 할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 버리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라던 할머니에게 우리는 봄이 오는 것을 막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그토록 소중한 6개월을 할머니와 함께 보낼수 있었습니다. 그 슬픈 초여름, 어머니께서는 장롱에 겨울옷을 접어 넣으며 소리없이 흐느끼셨습니다.

    <퍼날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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