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TC 임관식 '꼴지의 반란'

  • 김장렬 | 2006.02.28 18:49 | 조회 2647

    경원대 이명규씨

    ROTC지원땐 턱걸이 합격 올 임관식서 3663명중 1등


    “모든 꼴찌와 바닥 인생들에게 희망을….”

    2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학생중앙군사학교 연병장. 청운의 꿈을 안고 장교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학군장교들의 임관식이 열린 이날 이명규(李銘圭·23) 소위의 감회는 남달랐다.


    2년 반 전, 초겨울 기운이 옷 사이를 파고들던 11월 어느 날. 그는 경원대 학생군사교육단(ROTC)에 꼴찌로 합격했다. 그것도 최종합격했던 한 후보생이 외국에 유학을 가는 바람에 운 좋게 얻게 된 턱걸이 합격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날은 최고의 스타가 됐다. 대학 3, 4학년 동안 숨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3663명의 신임장교 중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부모님의 환한 웃음을 바라보며 ‘효도 한번 제대로 했구나’ 하는 뿌듯함도 솟아올랐다. 그의 눈앞에 힘들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의 가족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했다. 성남시 단대동 쇼핑센터에서 8평짜리 작은 옷 가게를 하던 부모님에게 사정없이 몰아치는 IMF 한파(寒波)는 넘기 힘든 고통이었다.


    가게 문을 닫은 어머니는 남은 옷가지를 싸 들고 길거리로 나갔다. 몇 푼이라도 더 건지려는 심정에서였다. 이후 아버지는 건설현장의 막노동판에 뛰어들었고, 어머니는 작은 공장에 취직해야 했다.


    고등학생 때 공사판에서 힘들게 움직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이렇게 힘든 일을 하시면서 우리를 키워주시는구나 생각하니….” 철이 든 이씨는 인생을 온몸으로 부딪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대학 입학도 쉽지 않았다. 경원대 경제학과를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손에는 합격대기자 ‘63번’이라고 적힌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좌절의 순간이었지만 그 앞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입학을 포기하면서 가까스로 대학문에 들어설 수 있었다.


    대학 1, 2학년 때는 아버지를 따라 건설현장에서 ‘노가다’ 일을 많이 했다. 설비담당이었다. 일당 5만원. 학비를 대는 부모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다. 방학 때는 거의 건설현장에 있었다.

    ▲ 2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열린 학군장교들의 임관식에서 이명규 소위가 부모님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어느 날 그는 ROTC를 통해 장교가 되기로 결심했다. 체력엔 자신이 있었고 학점도 남 못지않게 관리했다. 하지만, 2003년 10월 그는 ‘불합격’ 통보를 들어야 했다. 1년 이상 준비했던 그에게 청천벽력이었다.


    하지만 꿈을 잃지 않던 그에게 기회는 다시 주어졌다. ‘예비 1번’으로 등록돼 있던 그에게 ‘꿈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 “너 합격이야. 내일 당장 연병장으로 집합해.” 그는 그날 저녁 당장 머리를 깎았다.


    이후 2년간의 후보생 생활은 “모든 일에 몸을 던져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으로 산 나날들이었다. 단체 구보나 방학 때 입영훈련, 각개전투 등에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임했다. 몸이 긁히고 깨지면서도 항상 선두 대열엔 그가 있었다. 학군단 필기시험도 줄곧 1, 2위를 달렸다. 이 소위가 후보생 생활을 하는 2년 동안 부모님 얼굴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그는 “나중에 장군이 돼서 부모님을 다시 한번 활짝 웃게 해드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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